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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주 <극단 동성로 대표> |
스무 살, 온가족이 반대하는 연극을 하겠다며 버티다가 장맛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추석날 가족회의 끝에 쫓겨났다. 연을 끊고 살자는 가족에게 등을 보이며 꽉 다문 어금니 사이로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다짐을 수없이 내뱉으며 기차에 올랐던 그날, 내 주머니에는 단돈 1만원도 없었다. 객지 생활 3년 동안 입에서 입김이 펄펄 나고 그릇에 떠놓은 물이 얼어 마시지도 못할 만큼 추운 지하에서 한겨울에 전기장판 하나 없이 겹겹이 옷을 싸매 입고 살았다. 사과 하나를 먹는 건 호사 중 호사요, 하루 두 끼를 먹는 날은 운이 좋은 날이었다. 그래도 난 행복했다.
다시 가족과 연락을 하면서 가끔 찾아갔던 부모님의 집을 나설 때마다 엄마는 전주 뒤에 숨어 사라지는 내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셨다. 그런 어머니를 등 뒤로 느끼며 고개 한 번 돌리지 못하고 다시 객지로 가곤 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난 여전히 등 너머 어머니를 느끼며 공연장으로 나선다. 노모의 두 손에 내 아이의 손을 맡겨둔 채…. 혹까지 달아놓고 오는 지금도 마음이 편치 않지만 나는 여전히 행복하다. 아직도 그날과 같은 연극을 안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지 못한다는 연극. 연극으로 살아가기는 여전히 척박하다. 연극인뿐 아니라 모든 예술인의 삶이 결코 녹록지 않다. 칠십 넘는 연세에도 연극 한 길만 걸어온 원로 선생님들이 존경스러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내년 대구문화재단에서 개인예술가창작지원이 예정되어 있다. 이전에는 예술인에 대한 지원이 단체 중심이 대부분이었고 단체에 소속되지 않거나 소속되어 있어도 출연료를 받는 것에만 한정돼 있었다. 각종 지원 사업으로 공연사업은 활발해졌으나 개인의 창작 여건이나 생활에서 변화를 체감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지원을 받는 단체나 창작자는 이를 일회성에 그치는 보상처럼 활용해선 안 될 것이다. 모든 재단 지원 사업을 인큐베이팅 시스템으로 이해하고 사업 기간 후에는 더욱 발전되고 독립적인 단계에 도달해야 할 것이다.
연극, 영화, 뮤지컬, 방송 관련 수시 입시경쟁률이 200대 1 이상인 학교가 많다. 대학 졸업 이후에도 매순간이 오디션이고 평가를 받아야 하는 직업, 배우. 잘 하는 것만큼 오랜 시간 한 길에서 버티는 것 역시 어려운 직업, 배우. 여전히 평범한 연극인인 나에게 어머니는 지금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니 연극 고만하면 안 되나? 언제까지 할 끼고?” 나의 대답은 한결같이 “연극 만세!” 어머니는 오늘도 현관문 앞에서 눈을 흘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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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연극만세](https://www.yeongnam.com/mnt/file/201612/20161214.01023080426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