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가난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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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28  |  수정 2016-12-28 07:48  |  발행일 2016-12-28 제23면
[문화산책] 가난해도 될까요?
최영주 <극단 동성로 대표>

어느 날 후배가 당찬 목소리로 얘기했다.

“선배님, 언제 연극 하면서 돈 보고 했습니까! 없어도 해야죠. 그게 연극정신 아닙니까!”

반짝이는 눈빛만큼 확신에 찬 모습이 참으로 멋지다. ‘가난한 연극, 연극은 가난하다’라는 인식. 언제부터인가 가난이라는 수식어가 연극의 대명사처럼 쓰였다. 이 ‘가난한 연극’이라는 표현은 세계 공연예술계의 위대한 연출가이자 이론가인 그로토프스키의 이론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꾸미거나 의식하지 않은 자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삶의 본질을 찾고자 했던 ‘가난한 연극’을 이야기했다. 그가 말한 ‘가난한 연극’은 곤궁해서 발생하는 가난함이 아니라 비본질적인 모든 것을 벗어던진 연극 그 자체, 배우와 관객과의 관계에서 연극 본질을 정초하고자 했던 것이다.

“연극해서 돈벌 생각하지 마라.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라고 가르쳐 주셨던 나의 스승님. 진정 돈을 벌 수 없어서가 아니라 미래 보장이 어려운 예술의 세계에서 순수예술을 수행하는 힘이 생기기도 전에 물질적 대가에 익숙해질 것을 늘 염려하셨다. 그 본질의 정신이 훼손되면 진정 위기가 왔을 때 이겨내지 못함을 잘 알기에 수없이 세뇌시켜주셨던 나의 스승. 그러니 어린 후배가 찾아와 순수로 똘똘 뭉친 정신을 보여주니 숙연해지기까지 하다.

한 해의 마지막 문턱을 앞에 두고 2016년을 돌아보니 이처럼 다사다난했던 해가 있었던가 싶을 만큼 많은 일이 있었던 해였다. 특히 나보다 더 똑똑하고 더 많이 배우신 분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렸던 한 해였다. 나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모든 면에서 뛰어난 이 사회의 엘리트들의 행적이 삼류영화의 조잡한 사건처럼 나의 일상을 시끄럽게 했으니 말이다.

나는 흔히 말하는 금수저도 아니요, 가방끈이 길지도 않으며,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신의 직장을 다니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나의 삶이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본질을 버리지 않으려는 마지막 자존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2017년 정유년(丁酉年)에는 윗선에 계신 분들, 그로토프스키가 연극 본질을 찾으려 한 것처럼 ‘가난한 정치’ 좀 하셨으면 좋겠다. 정치와 국민과의 관계에서 본질을 놓지 않고 끝까지 붙들고 가는 신뢰로 고귀함을 보여주는 정유년을 기대해본다. 최영주 <극단 동성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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