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가족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7-02-16 07:53  |  수정 2017-02-16 07:53  |  발행일 2017-02-16 제24면
[문화산책] 가족
전태현 <성악가>

독일 생활 8년차 때의 일이다. 독일 뉘른베르크 국립극장 전속 솔리스트 단원 시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2013/2014 시즌의 공연들이 드디어 다 끝나고 기다리던 휴가가 찾아왔다. 6주간의 휴가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을 보기 위해 한국 방문을 결정했다. 나를 비롯해 아내와 두 아이는 설렘을 감추지 못했고, 고국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두 손 가득 선물을 들고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에 도착해서 바로 집으로 달려갔는데 비보를 듣게 되었다.

몇 주 전 장인이 우연히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고 담낭 쪽에서 쉬운 수술로 완치될 수 있는 작은 암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도착했을 땐 이미 수술이 끝난 후였고, 2~3일 중환자실에서 회복한 후 일반병실로 옮긴다는 설명을 들었다. 당황은 했지만 큰 수술이 아니라 해 마음이 놓였고, 간만에 찾은 한국에서 무엇을 하며 보낼지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일반병실로 옮기기는커녕 병세는 더욱 나빠져 심정지가 오고 인공호흡기 없이는 숨조차 쉴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우리는 모든 휴가 계획을 취소하고 정해진 시간에 잠깐의 면회만 허용되는 중환자실을 몇 주간 매일 오가며 장인어른을 뵈었다.

어느날 병원에서 다급히 전화가 왔다. 몇 시간 버티지 못할 것 같다며 와서 임종을 지키라는 전화였다. 온 가족은 부리나케 병원으로 달려갔고 장인어른을 뵈었다. 인공호흡기 없이 얕은 숨을 겨우 쉬고 있었다. 안색은 어둡고 몇 주간 식사를 하지 못해 많이 야위어 있었다. 얕은 숨은 더욱 약해져 서서히 멎었고, 온 가족은 찬양을 부르며 장인어른을 보내드려야만 했다. 가족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그리며 한국에 왔는데.

가족 중 큰 어른이신 분이 돌아가셨다. 결혼 후 바로 독일로 떠나 학업과 육아로, 직장생활로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나 자신이 너무나 미웠고, 아내에게 무척이나 미안했다. 그리고 무엇을 위해 가족과 떨어져 타향살이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처음으로 했다. 독일에 있는 동안 친형과 둘째처남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고, 조카들이 태어나는 순간에도 독일에 있었다. 친척 어르신들과 친척 누나가 돌아가셨을 때도 역시 난 독일에 있었다.

가족이란 옆에서 큰 힘이 되어 줄 수 없더라도 기쁠 때, 화날 때, 슬플 때, 그리고 즐거울 때 함께하는 사람이 아닐까? 가족들에게 단지 혈연으로 맺어진 사이가 아닌, 진정한 관계가 될 수 있길 희망한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