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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T-able’(2008년, 박정현 작)의 모델은 불편해 보이는 테이블에서 한시간 이상의 작업 이후에 불편함이 오히려 창작활동에 도움이 되는 것을 느끼며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다는 소감을 밝혀주었다. 현재 오스트리아 디자인 사무실에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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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현 <설치미술 작가> |
천재보다 바보 되기가 힘든 현대를 살면서 인간의 무한욕심을 즐겁게 반성하고 느껴볼 때가 왔다. 완벽함과 편리함, 아름다움(물론 미의 기준이 다르긴 하지만 여전히 존재하면서 높아만 가는 객관적인 기준)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필요 이상으로 지나친 편리함과 완벽함으로 육체적인 것은 물론 정신적인 문제까지 생김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욕심은 멈출 줄 모르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한없이 관대한 자연과 인간이 만들었기에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작품들(예술작품, 디자인, 건축을 포함) 사이에 욕심과 개성만 더 강해지는 인간, 우리는 늘 소통을 말하지만 지나친 편안함에서는 소통이 어려워짐을 느낀다.
영국에서 디자인 공부를 하던 시절 대학원 프로젝트에서 장애인센터를 방문한 후 그들을 위해 더욱 편리한 제품과 공간을 디자인해야만 했다. 나의 이성은 그들을 위해 무엇을 만들어야 하나 고민했었지만 나의 감성은 그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육체적인 불편함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지나치게 편리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불편할 거라 단정 짓고 우리가 세운 편리함의 기준에 맞춰 그들에게 편안함과 편리함을 강조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거만한 자세와 사고, 욕심이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미안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문득 어릴 적 시골 할머니 댁을 방문했을 때가 떠올랐다. 크지 않은 키에도 불구하고 대문과 방문을 들어갈 때면 이마를 박곤 했다. 문이 너무 낮았기에 할머니 댁을 방문할 때면 어쩔 수 없이 몇 번이고 목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대문을 들어가면서 마당(자연)에게 인사를 하고 방문을 들어가면서 TV(사물, 제품)에게 목례를 하는, 불편함이 주는 타의적 겸손함일지 모르지만 생각해보면 사물은 물론 자연까지 지배하고 싶어 하는 거만한 인간의 모습보다는 그들과 어울려 살았었다는 생각이 즐거웠다. 그렇게 나의 작업은 불편함을 즐기며 사람들과 사물, 자연과 소통하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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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불편함의 즐거움](https://www.yeongnam.com/mnt/file/201703/20170306.010230805280001i1.jpg)
![[문화산책] 불편함의 즐거움](https://www.yeongnam.com/mnt/file/201703/20170306.010230805280001i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