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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현 <설치미술 작가> |
정체성에 관한 고민은 어느 시대든 이슈였고, 나 또한 정체성의 상실을 느끼고 고민하는 현대인의 한 사람이다.
두세 개의 국적을 가진 혼혈인들은 그들의 정체성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철저히 자기 자신에만 집중하고 자신만의 색깔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현대인들 역시 자신을 버리는 과정에서 얻는 것이 진정한 정체성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남성’을 버리고 ‘여성’으로서, ‘여성’을 버리고 ‘남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서는 트랜스젠더처럼.
예술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미술과 디자인, 건축에서도 이러한 정체성의 문제에 대한 혼란을 겪고 있다.
아무것도 짓지 않는 건축가, 불편한 기능을 만드는 디자이너, 아름다움과 거리가 먼 작품을 하는 예술가들, 이 모든 것은 지난 50년간 포스트 모더니즘이 우리에게 줬던 자유가 오히려 혼란을 준 결과다.
서너 가지의 매체를 넘나드는 작가들은 예측 불가능할 만큼 다양하고 풍부한 현대미술 세계의 자유로움 속에 정체성을 잃은 듯하지만 실은 그 과정에서 진정한 예술과 그들 자신을 찾고 있다. 정체성의 상실을 고민하기보다 오히려 즐김으로써 현대미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셈이다.
순수예술을 전공한 나 역시 포스트 모더니즘의 끝에 떠밀려 어디론가 발길을 옮겨야 하는 조급한 마음에서 예술가가 아닌 현대인의 한
사람으로서 예술방향을 예견해 보게 되었다.
편리함과 아름다움만 강조하는 디자인은 사람을 쫓아가고, 미끼만 던져주고 도망가 버리는 현대미술은 사람들에게 쫓긴다.
디자인과 현대미술, 현대인들이 서로 쫓고 쫓기는 ‘어리석은’ 삼각관계가 지속돼 오면서 디자인과 순수예술은 가깝다 못해 이미 하나가 되었다.
이는 우리가 제품인지 예술품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여자인지 남자인지, 한국인인지 외국인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순수예술 정체성의 위기를 느끼고 있는 몇몇의 작가들은 뒷걸음질하고 있을지는 모르나 순수예술은 건축과 디자인을 삼켜 버렸고, 순수예술과 건축, 디자인이 서로 한 덩어리로 엉켜버린 예술의 통합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마치 수천년 전 순수예술, 디자인, 건축이 하나였던 시대가 다시 오고 있는 듯하다.
순수예술과 디자인, 건축의 고유성을 제거한 애매모호한 형태, 모든 것(everything)일 수도 있도 아무것(nothing)도 아닐 수도 있는 불명확한 형태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현대인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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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현대미술의 정체성](https://www.yeongnam.com/mnt/file/201704/20170403.01023080108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