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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한규 <시인> |
같이 일하는 동료 A씨는 오래전에 노동문학을 하는 사람들과 시를 썼다.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나아질 수 있도록 많은 애를 쓰면서 문학의 열정도 키웠다. 그러나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은 글을 쓰지 못한다. 가슴 속 한구석에는 쓰고 싶은 마음이 웅크리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두 아들이 대학생인데 아버지가 잔업과 특근을 하지 않으면 학교를 다니기 힘든 처지가 된다. 쉬는 날은 일요일뿐이다. 좋아하는 영화도 한 달에 한 편 볼까 말까다.
노동절에도 많은 사람이 일터에 나갔다. 노동이 삶의 등급을 좀 더 끌어올려주는 것이 아니라 짐이 되는 처지다. 그러니 많은 노동자에게 문화생활은 딴 세상에나 있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며칠 남지 않은 대통령선거에 나선 후보들도 노동자를 위한 정책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노동 3권’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까지 보장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노동자의 여가나 문화생활은 언제나 뒤로 밀려난다.
큰 공장 식당에서 쓰는 식자재를 운송하는 B씨는 새벽 2시부터 일을 시작해 정오쯤에 마친다. 그에게 쉬는 시간이란 대부분 잠을 자는 데 필요한 시간이다. 운송 일을 하기 전에는 산행에 열심이었으나 지금은 언감생심일 뿐이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직종을 바꾸지도 못한다. 어쩌다 모처럼 쉬는 날에 만나면 핏기 없는 얼굴로 “내가 미치지 않는 것만도 기적인 것 같다”며 쓸쓸하게 웃는다.
한때 노동자문화에 많은 관심을 갖고 함께 실천했던 지식인들도 지금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사실 ‘노동자문화’와 ‘노동자의 문화생활’은 그 성격이 좀 다르지만, 여기서 노동자문화까지 말할 수 있는 여유나 깜냥은 없다. 그저 노동자들이 쉬는 날 문화생활도 쉽지 않은 현실과 처지가 답답할 뿐이다.
대통령선거가 코앞이다. 포괄임금제에 묶인 노동자들이 야근을 하면서도 되레 시급이 줄어드는 기막힌 처지가 고쳐질 수 있을까. 고장나버린 노동자의 시계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을까. 변화와 희망을 만들어가는 것은 후보가 아니라 주권자다. 스스로 문화를 창조하는 주체, 그러니까 의식적인 역할을 스스로 이어나갈 때 사람은 비로소 삶을 살게 된다.
앞에서 말한 동료 A씨에게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다시 쓸 것을 권하고 있다. “사는 것이 그냥 소비뿐인 것 같다”고 말하는 그가 예전의 자긍심을 찾았으면 좋겠다. 일하는 사람들이 문화의 주체가 되고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위해서는 그 어느 때 못지않게 이번 선거가 중요하다. 주권의 힘을 현명하고 분명하게 보여줄 때다. 김한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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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노동자와 문화](https://www.yeongnam.com/mnt/file/201705/20170502.01023075707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