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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븐 퍼부시는 식탁 위에 있던 고추를 들며 포즈를 취했다. 그는 사진 촬영이 끝났다는 말에 한 입 크게 고추를 베어 물며 “이건 안 매운 고추”라고 말했다. |
지난달 25일 오후 6시 대구시 북구 산격동의 한 숯불갈비식당. 마주 앉은 낯선 외국인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상추쌈을 싸서 입에 넣었다. 옆 탁자에서 식사 중인 손님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그는 개의치 않는 듯 젓가락으로 겉절이를 한 움큼 쥐어 입으로 가져가더니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음식으로 삼겹살을 꼽는 이 외국인은 대구시 북구 침산동의 한 유치원에서 영어교사로 일하고 있는 데븐 퍼부시씨(Devon Furbush·31)다.
2015년 11월 기준 대구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3만8천899명, 대구 인구(248만4천557명)의 1.6%다. 지역 방언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국인이 종종 미디어에 나오는 마당에 데븐의 존재는 새삼스럽지 않다. 오히려 흑인들이 한국에서 인종차치을 경험한다. 지하철에서 마주친 중년 여성이 “까만 XX가 한국에서 뭐하는 거냐.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폭언한 일을 보고도 가만히 침묵하는 수많은 한국인을 보며 ‘한국인들은 원래 이런가’ 생각했다는 이야기 등이다.
드라마서 한국어 듣고 매력 느껴
대학때 1년여 학습…2014년 입국
유튜브에 대구에서의 일상 소개
대구시 SNS기자단 활동도 활발
“최근 TV에서 개그맨이 흑인 분장으로 우스꽝스러운 흉내를 내어 인종차별 논란이 일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라고 한국 거주 외국인의 차별과 편견에 대한 질문을 건넸더니 알 듯 말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재미없어요.” ‘넉살 좋은 외국인’의 말에는 유머러스함이 묻어났다.
데븐이 한국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 ABC에서 방송한 드라마 ‘로스트’를 보면서다. 배우 김윤진이 한국어를 하는 것을 보고 묘한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2011년 미국 텍사스주 안젤로주립대에서 미디어·문화학을 전공하다가 만나게 된 한국인 유학생과 친해지면서 한국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언어는 독학으로, 문화는 한국인 친구들로부터 익혔다. 그러던 중 문득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데븐은 한국어를 배운 지 1년6개월 만인 2014년 외국인 회화강사 비자를 발급받아 입국했다. 그는 “대학에서 프랑스어와 일본어, 스페인어도 배웠는데 한국어 숙련도가 유난히 높았다. 한국어는 읽는 대로 소리가 나오는 언어라서 영어보다 익히기 쉽다”고 말했다.
데븐은 입국 첫해 전남 진도에서 원어민 영어교사로 지내다가 이듬해 12월 한국인 친구가 살고 있는 대구로 왔다. 급하게 온 데다 한국어가 서툰 탓에 숙소를 잡지 못했고, 도심에 있는 ‘더스타일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냈다. 이후 2년간 게스트하우스의 스태프로 일하게 됐고, 대구지역에 호감을 느끼게 됐다.
데븐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친절하게 대해주고, 대구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줬다. 대구 사람들이 무뚝뚝하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보수적이라는데 그렇지 않고 마음이 열려 있다”고 했다. 더스타일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문화마을협동조합 박영준 대리는 “데븐은 지금 거의 경상도 사람이나 다름없다. 욕도 차지게 하고 사투리도 잘한다”고 귀띔했다.
데븐은 대구에서 느낀 좋은 감정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어 2015년 8월 페이스북과 유튜브에 ‘평범한 흑형, 노멀 브라더’라는 계정을 만들었다. 거기에 대구 곳곳을 돌아다니며 찍은 영상이나 자신의 일상을 담는다. 조회수가 많지는 않지만 꾸준히 영상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대구시 SNS기자단으로도 활동 중이며, 방송에도 종종 출연해 왔다. 대구의 지역번호 ‘053’을 딴 랩을 유튜브에 선보이기도 했다.
데븐은 8개월 전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와 북구 산격동 원룸에 살고 있다. 유치원 영어교사 일에 유튜브 영상 촬영·편집, 대구명소 탐방 등으로 쉴 틈조차 없단다.
인터뷰를 마칠 때쯤 “대구의 매력은 무엇인가. 이곳에 얼마나 머물 생각인가”라는 상투적인 질문을 던졌다. 대답은 이랬다. “글쎄요. 대구에 계속 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는 너무 덥잖아요. 푸하하하.”
글·사진=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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