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예술과 삶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7-05-04  |  수정 2017-05-04 07:42  |  발행일 2017-05-04 제21면
[문화산책] 예술과 삶
김향금 <대구현대미술가협회장>

대학은 내가 원했던 삶이 아니었다. 대학쯤은 가지 않더라도 내가 꿈꾸는 화가가 되겠다고 이미 마음을 먹었다. 지금은 사라진 대구시 동구 신천동에 6.6㎡(2평) 남짓한 공간이 나의 첫 작업실이었다. 그곳에서 혼자 작업을 하면서도 1년 동안 빼놓지 않고 했던 일이 중앙도서관에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는 일이었다. 칼퇴근을 하면서 칠성시장 근처에 있던 중고서점을 할 일 없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책을 사겠다는 목적도 없이 드나드는 나를 기억 못하는 주인은 없었다. 내가 책을 사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언제부턴가 주인은 귀하고 좋은 책을 골라서 내게 건네는 일을 즐겼다.

그 와중에 신천동에 조그만 작업실을 새로 얻었다. 옆방에는 주방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두 자녀를 키우는 부부가 있었다. 물론 그 사연을 알 만큼 그들의 삶에 깊이 들어갈 용기도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어떠한 삶이라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밤이 되면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갔던 나에게 그 공간은 달팽이집과 같았다. 내가 가진 꿈과 열정을 곰삭여야만 했기에 저질러 버리고 만 돌출된 객기였지만, 그 시절의 달팽이집은 천지도 모르던 나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열어주었다.

술 한 잔에 시험만 한 번 쳐보자는 친구의 꼬임에 넘어간 내가 입시를 치르고, 어쩌다 보니 대학까지 졸업하고 말았던 일은 주변의 지인들에게는 큰 사건이기도 했다. 달팽이집의 사람들은 내가 그림을 그리는 화가인 것을 동경했다. 화가 예비생이었을 뿐인 나를 화가처럼 대해주었고 마치 자신들의 삶 속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처럼 동경했던 그들. “이 세상에서 할 수 없는 일은 없어” “네가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는 거야”라는 말을 가끔씩 부딪히던 옆집 소녀에게 하면서 사인을 한 그림 하나를 선물해 주기도 했다. 지금은 40대가 되었을 그 소녀는 그 말을 기억이나 하고 살지 모르겠지만, 가끔 그때의 이야기를 나 자신에게 한다. 이 세상에서 할 수 없는 일은 없고, 네가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달팽이집에서의 경험들은 20대의 나를 문화운동에 몰입하게 하였고 내 삶을 바꿔놓았다. 밥 한 끼가 해결되지 않는 이들에게 문화가 무슨 말이냐고 하겠지만, 나는 인간이 동경하는 삶이 예술적 발화라고 믿기에 지금도 무모한 꿈을 꾸고 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하였기에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김향금 <대구현대미술가협회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