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5월이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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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05  |  수정 2017-05-05 07:38  |  발행일 2017-05-05 제16면
[문화산책] 5월이 되면
도기봉 <꿈바야 대표>

연초록 잎이 예쁜 5월이 되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 초등학교는 해마다 가을운동회를 했는데 5학년 때는 5월에 운동회가 있었다. 그때 학교 운동회는 동네 잔치인 양 풍성한 먹거리를 챙겨서 온 가족이 참석하는 가족행사였다. 달리기를 할 때마다 울려 퍼지는 총소리 때문에 깜짝깜짝 놀라던 나는 우리 반 차례가 되었을 때 초긴장 상태였다. 총소리가 나자마자 잽싸게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제일 작은 친구가 재빠르게 1등으로 달리자 운동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아이구야, 저 봐라 저 봐라, 쪼그마한 아이가 저리도 잘 달린다” 하며 앉아 있던 사람들도 모두 일어나 관심을 보였다. 키가 크고 호리호리했던 나는 그렇게 열심히 달렸는데도 6명 중 5등을 하고 말았다. 그때 엄마의 목소리를 아직도 기억한다. “키는 멀쩡하게 큰데 우째 젤 작은 저 아이를 못 이기노?” 아쉬워서 하신 말씀이리라. 그런데 최선을 다해 달린 나에게는 서운하게만 들린 말이었다.

학교에서도 1등에게는 ‘상’자가 찍힌 공책 2권, 2등은 1권, 3등은 연필 한 자루를 상품으로 주었다. 물론 4·5·6등은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그래도 내 나름대로 얼마나 용을 썼던지 달리기를 마치고 헉헉거리며 숨을 돌릴 만한 곳을 찾으니 아버지가 웃으며 다가오셨다. 머리를 한 번 쓰윽 쓰다듬으시며 “달리기는 달리데…” 하시고는 총총 가셨다. 아버지는 6명 중 5등을 했기 때문에 비난하거나 부끄럽다거나 하는 그런 뉘앙스로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냥 열심히 달리려고 애쓰던 내 모습을 알아주는 듯했다.

그날 밤 집에 오신 아버지의 손에는 ‘상’ 자는 찍혀 있지 않았지만 1등과 2등이 받은 것과 똑같은 공책이 들려 있었다. 무엇을 하든 1등을 하거나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나의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된 데는 어쩌면 그 일이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학교에서는 100점이나 1등이 최고다. 최고가 아닌 아이들의 노력은 누가 알아주고 칭찬을 할 수 있을까?’ ‘6명이 달리기를 했는데 5등을 하고서 상을 받은 사람은 이 세상에 몇 명이나 있을까?’ 이런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하다 보면 콧등이 시큰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5월이 되면 아버지가 생각난다. 운동회 때 나에게 준 노트 한 권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지금까지도 내게 큰 힘이 될 거란 것을 그 시절 아버지는 알고 그러셨을까.
도기봉 <꿈바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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