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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와 일을 했던 나는 군복무를 마치고 1985년에 대학에 들어갔다. 전공이 미술인데 학보사에 시험을 쳐서 학생기자가 되었다. 학교가 생긴 후로 미술전공자가 학보사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전공인 미술보다는 기자되기에 열심이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에 빠져들었다. 마약 같았다고 할까. 그림을 그리고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그러다가 1987년이 되었다. 20대 중반이었다. 보장된 앞날의 꿈만 꿀 수 없었다. 헤어 나올 수 없었다. 부모는 황해도 해주에서 가족보다 먼저 남으로 내려왔다. 가족과의 재회는 이뤄지지 않았고 빈농이 되었다. 형과 누나는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대학을 간 자식과 동생을 온 가족이 바라보았다. 그러나 수배를 받고 구속이 되고 제적을 당했다.
이런 얘기를 왜 하고 있는 걸까. 이번 주가 6월 민주항쟁 30주년이다. 그때 이른바 민중문학과 민중미술을 공부하며 어설프게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30년 지나 이런 글을 쓰리라고 당연히 예상 못했다. 그러나 회상하지는 않는다. 기억이다. 그러나 또 기억은 왜곡되기도 하므로 ‘기억주체’가 문제다. 그러니까 30년이 지난 지금, 기억은 또 하나의 ‘실재’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가!
어떻든 우리 사회는 좋게 바뀌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러면서 곰곰이 살펴보면 문화예술은 진보와 성장의 과실을 많이 따먹었다. 이른바 비주류에서 주류로 행동양식이 제도가 될 때 문화예술은 안정을 바란다. 그럼에도 언제나 등을 돌리는 것, 안정과 체제로부터 언제나 돌아서는 것이 문화예술을 하는 자세가 아닐까. 감히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하고 있다. 지난 30년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지난 30년, 판에 박힌 구호와 이론의 민중, 정치의 야심, 이름을 위한 명리(名利)에서 등을 돌리고자 했다.
40대 초반까지 이른바 ‘문화일꾼’을 했다. 그러나 점점 그 문화예술은 ‘물덤벙술덤벙’ 시장의 상품이 되어갔다. ‘돈이 되는 짓을 해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능력이 없어 시장에 나가지 못했다.
내겐 결핍이 힘이다. 희망은 ‘생활양식’임을 믿고자 한다. 결과를 먼저 얻으려고 할 때 의도는 속절없이 스러진다. 그래서 실패를 공경한다.
1987년 6월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실패할 준비가 되었는가. 실패하는 시를 쓰려고 하는가. 다시, 어떤 것에서 등을 돌려야 하는가. 김한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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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지난 30년](https://www.yeongnam.com/mnt/file/201706/20170606.01021075345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