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약속, 잘 지키세요?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7-06-09  |  수정 2017-06-09 07:48  |  발행일 2017-06-09 제16면
[문화산책] 약속, 잘 지키세요?

모 학교의 학부모 특강을 의뢰 받은 일이 있다. 당일 아침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확인문자도 받았지만 나는 그 문자를 읽고서도 다음 주 강의라고 생각을 했다. 오후 2시10분 전에 다급한 목소리의 선생님이 “박사님, 어디세요?” 하신다. 난 담담하고 상냥하게 연구소라고 대답을 했다. 울먹이는 듯한 선생님의 목소리, “2시부터 강의 시작인데 연구소에 계시면 어떡해요? 아침에 문자도 드렸는데….” 그제야 나는 담담할 수 없는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우여곡절 끝에 일은 해결했지만, 정말 약속을 중요시하는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겼다.

젊었을 때는 5분이나 10분 지각하는 것조차 끔찍하게 싫어했는데, 이제는 지각이 아니라 강의를 통째로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이 생기니 잊지 않기 위해 메모를 해 두고서도 메모가 소용없을 때도 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철저하게 약속을 지키고자 하지만 때론 안 될 때도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고,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나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졌지만,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지기도 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예전의 나처럼 약속을 중요시하는 엄마들을 만난다. 아이들에게 약속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려는 의도인 것은 알지만 아이를 향한 엄마의 말이나 행동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초등학교 4학년인 민수(가명)와 3학년인 윤수(가명)는 연년생이다. 민수 엄마는 덩치가 큰 민수가 체구가 왜소한 윤수를 밀거나 때리는 일이 자주 생기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 외출할 일이 생기면 민수를 붙들고 1시간 넘게 주의를 주었다. “너 오늘은 식당에서 절대로 윤수를 때리거나 밀면 안 돼.” 말로만 하는 것은 마음이 안 놓여 “약속해!” 하면서 민수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로 도장을 찍고, 손바닥으로 복사까지 했다. 그런데 민수는 식당에서 밥 먹고 윤수와 잘 지내는가 했더니 또 동생을 밀고 말았다. 놀란 엄마는 부리나케 윤수를 챙기며 민수에게 다그치듯 말했다. “너 엄마랑 약속했지? 약속 안 지키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랬지? 지금 약속 안 지키는 사람이 누구야?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야! 나중에 군대생활·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겠어?” 이 정도의 말을 듣게 되면 민수의 고개는 푹 숙여지고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런데 민수는 엄마와 약속을 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엄마의 일방적인 지시로 약속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한 번쯤 자녀들과 무엇을 위해 약속을 하는지 그 내용에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자녀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강요하고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하지는 않는가. 때론 부모도 지키지 못하는 약속이 자녀들을 처벌하기 위한 구실처럼 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도기봉 <꿈바야 대표>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