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나를 고개 숙이게 하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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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08 07:40  |  수정 2017-09-08 07:40  |  발행일 2017-09-08 제16면
[문화산책] 나를 고개 숙이게 하는 당신

여행을 다니다 보면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된다. 같은 숙소에서 만나 친구가 되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도움을 청하다 마음이 맞아 여행 메이트로 지내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누군가와 여행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타인의 삶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어릴 적부터 소녀가장으로 살아야만 했던 동갑내기,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홀로 세계여행을 떠나온 소년 등 그렇게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자연스레 ‘아, 나는 그간 어떤 삶을 살았나’ 하고 비교를 해보기도 한다.

남부럽잖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근사하게 살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이런 생각은 쏙 들어간다. 다들 성공하며 살고 있고, 내가 한 고생은 고생 축에도 못 든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인도 여행 중, 대여섯명의 동행과 해외 워킹홀리데이를 주제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무리에선 아무래도 캐나다 경험이 있는 내가 할 말이 좀 더 많았던지라, “나 워홀 생활하는 동안 1천만원 가까이 모았다”라고 자랑스레 말을 꺼냈다.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괜히 어깨가 으쓱해져 한참 동안 캐나다 무용담을 늘어놨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옆에서 내 말을 듣고 있던 동행 중 하나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난 호주에서 한 달에 1천만원 벌었는데.” 놀라운 이야기에 일행의 시선은 그녀에게로 쏠렸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호주에 있는 농장에서 하루 종일 과일 재배를 돕다 보면 한 달에 1천만원 버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고.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얼굴에 화끈화끈 열이 올랐다. 내가 세상 고생 혼자 다 한 척 자랑스레 늘어놓던 말들이, 누군가의 경험 앞에 세상 부끄러운 것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여행을 하다 보면 나 같은 건 딱 ‘평균’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타인의 삶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성공에 고개 숙일 줄 알게 되고, 내 삶을 위해 했던 노력을 과대평가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바로 여행을 통해서. 그리고 타인의 삶을 통해서.

만일 당신이 지금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여행 가방을 챙기는 과정에서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여유’ 역시 한 줌 정도 넣어가보라고 간곡히 권하고 싶다. 생각보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자만과 오만을 발견하는 경우가 꽤 많으니까 말이다. 서현지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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