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해는 기울어도 노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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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28  |  수정 2017-09-28 07:51  |  발행일 2017-09-28 제23면
[문화산책] 해는 기울어도 노을은…

해리 리버만은 폴란드 태생의 미국 화가다. 27세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성공 후 은퇴하였다. 은퇴 후 노인 학교에서 친구들과 체스를 두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부터 체스 친구가 오지 않아 우두커니 앉아 있을 때 한 젊은이가 “그림을 그려보는 게 어떻겠어요?”라고 말을 건넸다. 해리가 붓도 잡을 줄 모른다 하니 젊은이는 “제가 보기엔 할아버지는 연세가 아니라 할 수 없다는 마음이 더 문제 같아요”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해리는 그림을 배우기 시작해서 매일 그림을 그렸고, 인생의 깊이를 담았다. 젊은이들이 갖지 못한 성숙함이 그림에 반영되었고, 미술평론가들은 그를 ‘원시적 눈을 가진 미국의 샤갈’이라고 극찬했다.

22번째 전시회가 열렸을 때 그는 101세였다. 우리는 해리처럼 몇 년 더 살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더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꿈을 꾸는 데는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

80세 가까운 이모는 중학생이다. 어릴 때 못한 공부가 아쉬웠던 그녀는 이제 사회보호 대상이 아니라 생기 넘치는 학생이다. 6·25전쟁 중 초등학교에서 동생들을 돌보며 배웠던 공부가 얼마나 머릿속에 남아있을까?

이제 할머니지만 학교로 돌아간 이모는 배움으로 눈을 반짝이고 있다. 공통 관심사가 없어서 안부만 묻던 이모와 나는 요즈음 영어 수업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노인들의 배움은 열정이다. 플루트를 배우려는 학생은 초등학교 2~3학년 때 대체로 주도적 자의식을 가지고 결정해서 온다. 부모의 의지에 따라 어릴 때 시작하는 피아노나 바이올린보다 포기도 적고 열정도 높다. 어르신은 배우는 것도 시작하는 것도 두려워하지만, 플루트를 배우려는 아이처럼 배움에 대한 주관은 뚜렷하다. 그래서 시작하기만 하면 열심히 한다. 어린 학생과 사뭇 달라서 급할 것도 없고 경쟁의식도 없다. 그래서 천천히 느긋하게 자기 페이스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

은퇴를 앞둔 분들이 플루트를 배우기 위해 온다. 그리고 젊은 성인보다도 훨씬 진도가 빠르다. 아이들은 의심 없이 선생님의 말을 듣지만, 성인은 자기 생각을 자꾸 덧붙인다. 그래서 끊임없는 걱정으로 오히려 더디다. 반면 어르신은 열정은 있지만 걱정이 없어서인지 빠르다.

어르신은 단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연주하고 노래하려 한다. 그래서 수업마다 열심히 하고, 느리지만 향상되어 간다. 그런 여유와 열정이 어르신의 연주력을 향상시키는 바탕이 되는 것 같다. 해는 기울어도 서녘 하늘은 오래도록 붉다. 어르신의 열정에 나는 또 노을을 보며 노을이 고운 까닭을 생각해본다. 김민희 <플루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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