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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은숙(대구시립합창단 부지휘자) |
“아주 역설적이지만 의사들은 가장 상처받기 쉬운 사람들이다. 우리의 기대만큼 흡족하게 치료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들은 수없이 고뇌한다. 그들은 ‘상처 입은 치유자’이다.” 에릭 시걸의 소설 ‘닥터스’에서 의학 박사 바니 리빙스턴이 한 말이라며 친분 있는 의사 선생님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의사가 누군가를 치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음악을 하는 사람들도 음악을 통해 상처 받은 이들을 치유하는 것 같아요.” 상처 입은 음악가, 그러나 치유하는 음악가. 나의 뇌리를 가장 먼저 스치는 음악가는 베토벤이다.
18세기 후반 유럽에서는 자유와 평등의 사상을 전파하는 계기가 된 프랑스 대혁명(1789)이 일어나는 등 오랫동안 정착되어온 봉건체제 사회에 대한 변혁의 물결이 일고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베토벤의 청력 상실의 징후는 20대부터 있었다고 하니, 그의 20~30대 삶은 이러한 사회적 혼란과 청력 상실이라는 운명 앞에서 거칠게 뒤흔들린 가슴으로 서 있었을 것 같다.
전 세계적으로 12월에 가장 많이 연주되는 교향악단의 레퍼토리는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Op.125’일 것이다. 그가 50대에 완성된 이 교향곡은 서양음악사에 있어서 큰 획을 그은 생각의 발상이며 혁신 그 자체였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시도로 성악과 기악을 결합시킨 최초의 교향곡이기 때문이다. 4악장에 합창이 나오는 이유로 부제가 ‘합창’인 이 교향곡은 그 가사에 “범인류적 사랑을 통하여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자”는 독일의 문호인 쉴러의 시가 인용되었다. 초연이 이루어졌던 당시 그는 이미 청력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귀로 듣지 못해 마음으로 들었을 것이다.
1989년 12월,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을 기념해 이 곡을 연주하던 세계적인 지휘자 번스타인이 ‘환희의 송가’가 나오는 4악장의 노래 부분에서 눈물로 연주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 뜨거운 눈물은 전 세계를 감동시킨 베토벤 음악의 힘이며 자유와 이상을 염원하는 베토벤 철학의 힘일 것이다. 베토벤의 가슴속에 담겨있는 뜨거운 열정이 감동의 음악으로 거침없이 뿜어져 나오기까지 그는 얼마나 고뇌하고 번민하였을까. 그래서 창조적인 예술가의 견딜 수 없는 충동에 의해 진정한 예술이 생긴다고 하는가 보다.
클래식음악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겸손과 배려, 그리고 사랑이 있는 음악의 정서를 알게 될 것이다. 특히 그것이 가사음악이라면 더 많은 이들에게 마음을 쓰다듬는 위로가 되고 살아가는 이야기가 되고 삶과 정서에 공감을 주기도 할 것이다.
들을 수 없던 베토벤이 들을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향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했을까. 가만히 눈 감아본다.
심은숙(대구시립합창단 부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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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상처 입은 치유자 베토벤](https://www.yeongnam.com/mnt/file/201712/20171221.01023081525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