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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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22  |  수정 2017-12-22 07:39  |  발행일 2017-12-22 제16면
[문화산책] 불가지
고현석<영화감독>

김연수 작가의 단편소설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의 주인공 ‘그’의 여자친구는 유서를 남겨놓고 돌연 자살을 한다. 여자친구의 죽음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던 그는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여자친구에 대한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소설을 완성한 후 죽음의 산이라 불리는 낭가파르바트로 떠난다.

소중한 사람의 이해할 수 없는 죽음, 이른바 ‘불가지(不可知)’에 당면한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는 고에레다 히로카즈의 데뷔작 ‘환상의 빛’에도 나온다. 유미코는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이쿠오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어느 날 이쿠오가 돌연 자살하고 유미코는 남편이 죽은 영문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 담담하게 유미코가 감내하고 있을 고통의 징후만을 보여주던 영화는 끝내 남편의 죽음은 불가지로 남겨둔 채 막바지에 이르러 꾹꾹 눌러낸 감정을 터트려낸다.

영화는 질문의 질문을 연쇄시켜나가지만 대답은 내놓지 않는다. 이를테면 태어나지 말아야 할 사람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그 사람은 죽여도 되는가. 소송경제와 법리로 유죄가 무죄로, 무죄가 유죄가 될 수 있다면 사형이란 제도는 타당한 것인가. 그럼에도 죽어야 될 사람은 어떻게 심판하는가. 마지막 주인공은 사방으로 트인 네거리 한가운데 고립된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주인공처럼 영화를 보고 나면 질문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기분이 든다. 끝내 영화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우리의 삶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불가지의 영역으로 밀어넣는다.

영화를 만들다보면 그런 순간이 있다. 가공의 인물이 가공의 공간에서 가공의 사건을 겪는 이 가공의 세계는 직관을 통해 인과관계로 정리한 허구의 세계일 뿐, 이 허구의 세계는 불가지를 풀어내는 열쇠가 될 수 있는가. 될 수 없다면 열쇠 비슷한 무언가라도 되지 않을까.

작업을 하는 동료들 중에 쉽게 작업하는 동료들이 없다.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 꼬집어 설명할 순 없지만 이건 아니라는 직감이 들어 스태프의 아니꼬운 시선을 감내하며 다시, 다시, 다시를 외치는 이가 있고 내가 겪어보지 못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는 어떤 이는 그 삶을 간접적으로라도 겪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다른 매체와 달리 영화는 협업을 통해 만들어진다. 설산을 오르기 위해 동료들은 서로의 몸에 줄을 엮지만 내딛는 한발 한발까지 남이 대신해줄 수 없기 때문에 동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이 당면한 불가지를 극복하려 한다. 얼마나 많은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영화를 만들어야 알 수 있을까.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수정의 니르바나로 갈 수 있을까. 알면 알수록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 같다. |
고현석<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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