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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원<대구미술관 전 학예연구실장> |
20세기 이후 미술형식의 많은 예 가운데 회화, 조각 등의 매체 중심적 형식, 즉 ‘오브제(objet)’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퍼포밍 아트를 꼽을 수 있다. 퍼포밍 아트는 그림이나 조각 같이 ‘오브제’, 즉 ‘물건’으로서의 완결성을 갖지 못하여 거래대상으로 거론되지 않았다. 정해진 장소에서 관람객과 만나는 작가나 퍼포머들의 강렬하고 뜨거운 ‘행위’는 날것 자체로서 그저 사라지기 일쑤다. 결과물로 만든다면 퍼포먼스를 기록한 사진이나 필름 정도일까. 아트 페어로 대변되는 아트 마켓은 이런 퍼포밍 아트에 상품적 가치는 거의 없음을 판단해 왔다. 그런데 최근 몇년간 퍼포밍 아트, 곧 라이브 퍼포먼스 형식의 작품은 예술적 가치를 주목하는 비엔날레나 미술관 등의 전시는 물론 아트 페어의 주요 프로젝트로 자리잡고 있다.
슬로바키아 출신의 미술가 로만 온다크의 ‘좋은 때, 좋은 기분’은 영국의 테이트모던이 구입한 퍼포먼스 작업이다. 거래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니고 결과물도 없다보니, 일반적인 거래대상으로서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이 작업은 놀랍게도 2003년 런던 프리즈 아트 페어에 출품된 작업이었다. 아트 페어 당시 로만 온다크는 아트 페어 VIP룸 앞에 자신이 고용한 퍼포머들을 줄 세워 놓았다. 온다크의 퍼포머들은 VIP가 아니다 보니 정작 줄은 서있지만 아무도 VIP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실제로 퍼포머들의 줄 뒤에 따라 서있던 진짜 VIP들은 아무리 서 있어도 줄이 줄어들지 않아 자신들조차 룸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관람객 중 줄선 행렬에 호기심이 생긴 이들은 줄에 합류하기도 한다. 로만 온다크의 ‘좋은 때, 좋은 기분’은 우리 일상 속의 줄서기 등의 규범적 상황이나 관습의 이면에 존재하는 사회적 혹은 예술적 구조 내의 계급과 자본, 규범과 불평등의 관계를 선명하게 보여준 작업이다. 테이트모던이 소장품으로 구입한 온다크의 작업 ‘좋은 때, 좋은 기분’의 형태는 작품이 진행되어야 하는 내용과 과정이 담긴 시나리오, 즉 지시문이었을 것이다.
예술의 상품성, 그 자본적 가치를 두둔하는 입장에서 볼 때, 퍼포밍 아트는 지극히 쓸데없는 짓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결과물도 없는 퍼포밍 아트가 실물거래를 전제로 한 ‘아트 페어’에서 소개되고 미술관에선 소장품으로 구입한다. 예술적 가치를 옹호하던 입장과 상품적 가치를 옹호하는 입장의 적대적 관계는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되어 왔다. 그 장미의 전쟁은 끝이 났고 예술적 가치, 혹은 비상품적 가치를 구매하고 거래하는 것이 오늘날의 아트신이다. 아트 바젤 홍콩이 이번 주에 개막한다. 전 세계 미술계에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 행사 중 하나가 된 아트 바젤의 홍콩 시장이 어떤 가치를 거래 품목으로 내놓을지 궁금하다. 김주원<대구미술관 전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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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퍼포밍 아트의 가치](https://www.yeongnam.com/mnt/file/201803/20180326.01022073107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