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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영(극단 만신 대표) |
연극을 처음 시작하던 시절, 나에게는 꽤 심한 무대공포증이 있었다. 공연이 있을 때마다 무대 뒤편에서 남들 몰래 청심환을, 그것도 흡수가 빨라 효과도 빠르다는 액체형 청심환을 한 병씩 먹어야만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나 스스로도 왜 그리 긴장이 되는지 이유를 알지는 못하고, 환하게 비치는 조명이 내 공포감을 자극하는 것 같다는 느낌에 ‘조명 울렁증’인가 보다 하고 추측만 할 뿐이었다. 그러다 이청준의 소설 ‘소문의 벽’을 읽고서야 내 공포증의 진짜 원인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취조실에서 몸을 결박당한 채 자신의 얼굴을 향해 비치는 불빛을 바라본다. 눈부신 불빛 너머에는 불빛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는 조사관이 있다. 그는 누구일까? 그는 내가 어떤 대답을 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일까?
무대라는 공간도 소설 속 취조실과 비슷한 점이 있다. 무대는 ‘엑스레이 사진’ 같은 곳이라고들 한다. 말 그대로 배우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가 모조리 노출되는 곳이라는 의미다. 자신의 모든 존재가 노출된 순간, 환한 무대 조명 건너편에는 그런 자신을 보고 있는 관객들이 있다. ‘관객들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한 명의 배우, 한 명의 사람으로서 객석에 있는 이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심은 배우에게 큰 긴장과 경직을 불러일으킨다. 긴장을 하지 않기 위해 객석을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하면, 그것이 오히려 더 큰 긴장을 낳는 식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이런 문제는 연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배우들에게는 꽤나 큰 골칫거리다. 그래서 어느 유명 연출가 겸 배우훈련가는 그 해결 방편을 소설 형태로 책에 담아내기도 했다. 그가 제시한 해결책이란 제4의 벽(무대 위에 구축된 극적 가상공간과 객석을 가르는 보이지 않는 벽) 너머에 신경을 쓰거나 혹은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대신, 지금 내가 무대에서 하는 행위에 집중하라는 것이었다.
실제 이 방법론은 꽤나 유용하다. 배우가 무대 위에서 밟아가야 할 인물의 삶과 행동에 오롯이 집중해 밀도 있고 탄탄한 연기를 수행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배우는 제4의 벽 바깥에 있는 관객들이라는 존재는 완전히 잊어버려도 되는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배우들에게는 ‘연주술’이라고들 부르는 덕목 또한 요구된다. 공연장의 음향적 특성에 따라 어떤 식으로 대사를 해야 관객에게 잘 전달될지 확인해야 하고, 공연을 할 때는 그 내용을 바탕으로 음성의 운용에도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그래서 어렵다. 배우들의 처지가 꼭 삶 같다. 나의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하지만, 남을 잊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어려워서 연극은 더욱 재미있다. 김지영(극단 만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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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무대공포증](https://www.yeongnam.com/mnt/file/201803/20180330.01016073212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