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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원 (대구미술관 전 학예연구실장) |
실물화폐와 달리 중앙발권 은행이 없고, 인터넷 네트워크에 분산 저장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가상화폐가 최근 논란이다. 가상으로 거래되고 저장되다 보니 가치의 변동 폭이 극심하고 보안의 취약함이 논란을 부추기는 것 같다. 세계의 금융학자와 업계관료들도 가상화폐의 ‘신뢰성’에 대해 꾸준히 의문을 제기해 왔다.
미국 MoMA가 2012년 기획한 전시 ‘도쿄 1955-1970: 새로운 아방가르드’는 전후 일본 아방가르드미술을 본격적으로 재조명한 전시였다. 당시 MoMA에 전시되었던 작품 중 ‘화폐’를 모티프로 한 아카세가와 겐페이(1937~2014)의 ‘천 엔 지폐 재판’ 시리즈는 전후 일본의 미술 역사에서 전례 없는 논쟁의 국면을 열었던 사건이자 작품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작품 ‘천 엔 지폐 재판’은 1960년대 당시 일본을 대표하는 전위미술가 아카세가와가 실제 천 엔짜리 지폐와 동일한 크기로 인쇄된 3천장의 인쇄물을 활용한 ‘모형 천 엔 지폐’ 시리즈에 기초하고 있다.
아카세가와의 ‘모형 천 엔 지폐’ 시리즈는 두 가지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첫째는 인쇄한 천 엔 지폐의 일부를 지폐와 같은 사이즈로 재단한 후 사용하는 방식이다. 개인전 초대장 용도로 사용하는가 하면 TV에 출현하여 태워버리는 등의 퍼포먼스에 활용했다. 둘째 방식은 위와 동일한 인쇄물을 재단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작품에 사용한 경우다. 술병, 숟가락, 두상 등 각종 오브제를 싸기 위한 포장지로 활용하거나 볼트로 패널에 고정하였으며 벽에 붙이기도 하였다. 문제는 여기서 생겼다. 두 번째 방식의 작품 일부가 ‘통화 및 증권모조단속법’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법정에 소환되고 말았던 것이다.
1966년 10월8일 도쿄지방재판소 701호 대법정에서 열린 ‘천 엔 지폐 재판’은 대단히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었다. 판결의 이슈는 ‘모형 천 엔 지폐’ 시리즈가 ‘예술이냐, 위조지폐냐?’였고, 결국 ‘예술(작품)이란 무엇인가’라는 예술논쟁으로 모아졌다. 아카세가와는 변호인으로 당대 내로라하는 미술비평가들을 세웠다. ‘모형 천 엔 지폐’ 시리즈가 예술임을 입증하기 위해 증거물은 온몸을 빨래집게로 집은 퍼포머가 포함된 전위적인 예술작품이 제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1970년 아카세가와는 징역 3월 집행유예 1년이라는 유죄확정판결을 선고받았다. 이후 그는 ‘모형 천 엔 지폐’ 시리즈에서부터 이에 대한 예술진위논쟁을 다룬 재판까지 아우른 자신의 작품 ‘천 엔 지폐 재판’을 완성하였다. 어떤 것도 예술일 수 있는 시대라고 말한다.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이지만 공허할 수 있는 물음 이전에 ‘예술을 예술답게 하는 기준’에 대한 사유가 절실한 시대다. 김주원 (대구미술관 전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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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예술을 예술답게 하는 기준](https://www.yeongnam.com/mnt/file/201804/20180402.01024080230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