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성악가들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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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29  |  수정 2018-11-29 07:56  |  발행일 2018-11-29 제22면
[문화산책] 성악가들의 겨울
장윤영<오페라 코치>

지난 22일은 1년의 24절기 중 20번째 절기인 소설(小雪)이었다.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됨을 알려주는 첫눈이 내린다는 그날부터 여지없이 차갑고 날카로운 바람은 시작되었다. 바람이 차가워질수록 유난스럽게 비상체제에 돌입하는 이들이 바로 성악가들이다. 유독 늦가을부터 겨울시즌은 국내 클래식계에 성악공연이 넘쳐난다. 성악가는 몸이 악기이기 때문에 감기가 유행하는 겨울에는 한층 더 ‘악기’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찬바람은 목에 치명적이기 때문에 외출은 극도로 자제하고 외출 시에 마스크와 머플러는 기본이다. 물론 봄에는 꽃가루로 인한 알레르기와 비염으로 고생을 하고 여름에는 에어컨 바람으로 고생을 하므로, 어쩌면 그들은 일 년 내내 아슬아슬할 것이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나로서는 성악가와 작업하는 대구의 여름은 풀가동되는 에어컨 전원을 끄러 다니느라 바쁜 성악가들 덕택에 추운 겨울보다 더 힘든 계절이지만 말이다.

오랜 시간 그들을 지켜보다 보니 참 다양하고 웃기고도 짠한 모습들을 접한다. 목을 아끼기 위해 말을 하지 않고 글로 적으며 의사소통하는 사람, 한여름에도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다니는 사람, 매운 것도 뜨거운 것도 너무 차가운 것도 먹지 못하는 사람, 탄산음료를 김을 다 빼고 마시는 사람 등. 목에 좋은 거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덥석 입에 넣는 그들은 이렇게 살얼음 위를 걷듯 조심스럽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징크스 아닌 징크스를 만들고 그것을 없애기 위해 독특한 자기만의 무엇을 가지고 있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폐로부터 공기를 밀어내고 성대를 통해 입 밖으로 내야 하는 행위를 통해 100명이 넘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소리 위에 마이크와 앰프의 도움 없이 1천석이 넘는 객석을 꽉 채운다는 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 많은 성악가들은 무대 위에서 황홀하고 영광스러운 순간에 종종 사로잡힌다. 그 영광을 위해 그들은 절제와 스파르타식 자기훈련을 위한 폐쇄적 삶을 살아 내야만 한다. 본능적으로 반응할 수 있을 때까지 사고와 근육은 훈련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공연이 시작되면 이러한 훈련이나 기술은 표면에서 형체가 사라져버린다. 그것들은 음악으로, 가사로, 연기로 바뀌어 연주의 성과를 좌우한다. 대부분의 테크닉과 표현들은 오랜 훈련을 통해 정복될 수 있지만, 아무리 능숙한 가수라도 실수의 가능성을 모른 척 할 수는 없다. 이 두려움은 완전히 정복하기가 불가능하며 모든 연주자들은 두려움을 간직한 채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빛나는 영광 뒤의 노력과 인내는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하고 철저하다. 그들의 겨울은 누구에게보다 춥고 매섭다. 모두 무사히 잘 이겨내어 행복하게 따뜻한 봄을 맞이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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