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삶은 연극인가, 제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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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17  |  수정 2018-12-17 07:35  |  발행일 2018-12-17 제22면
[문화산책] 삶은 연극인가, 제식인가
이진명 <대구미술관 학예실장>

서양인은 2천500년 전부터 연극을 마치 일상처럼 체득해왔다. 인생을 연극으로 이해한 서구의 전통은 셰익스피어 ‘맥베스’ 5막 5장의 독백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인생은 걸어 다니는 그림자일 뿐이다. 가련한 연기자가 무대 위를 뽐내듯 활보하다 자신의 시간이 지나감에 초조하여 안달복달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고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그것은 백치가 들려주는 이야기,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찼으되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는 이야기다.”

인생은 탄생으로 출입하게 되며 죽음으로 퇴장하고 마는 연극무대다. 그러나 이는 결코 제행이 무상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무엇이 되었던지 목숨을 걸고 연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앙가주망(engagement)’이라고 했다. 구속과 계약이다. 우리의 인생은 하느님이라는 연극 연출자에게 구속적 계약이 걸려있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혼신을 다해서 연기를 해야 한다. 그것이 걸어 다니는 그림자임을 알더라도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동양은 인생을 연극으로 보지 않았다. 거대한 제식이라고 보았다. 제식의 존립은 신의 존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 사이의 예의가 있기에 제식이 존재한다. 예의는 인간의 관계에서 시작한다. 이 관계망은 진중한 의미를 부여받아 사회로 확장된다. 의미는 이내 사회를 넘어 우주 전체로 확장된다. ‘논어’의 ‘팔일’에서 자공이라는 제자가 초하룻날 태묘에서 고하며 바치는 희생양을 치우려고 했다. 희생양이 불쌍했거나 경제적 이유에서 아끼고 싶었을 수도 있다. 자공에게 공자는 말한다. “너는 그 양이 아깝느냐, 나는 그 예(禮)가 아깝단다." 예는 단순한 에티켓으로 번역되지 않는다. 예는 중국말로 ‘리’라고 발음되며 우주의 이치를 뜻하는 리(理)와도 같은 발음을 낸다. 주희는 “예는 곧 리”라고 말했다. 동양에서는 제식의 순간에 지극한 정성의 예를 올리듯 인생을 살라고 가르친다. 모든 사람에게 매 순간이 제식인 것처럼 진실무망(眞實無妄)하게 살라고 가르친다.

우리의 인생이 연극이든 제식이든 힘든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양의 삶에 대한 이해방식은 자유롭고 심원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누군가 감시하는 외재자가 있다. 신의 존재를 전제한다. 동양의 삶에 대한 이해방식은 준엄하고 무거워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밝은 것이다. 신의 존재를 전제로 한 믿음이 아니라, 인생 자체를 우리 인간이 서로 지켜야 할 마땅한 도리라고 자각하고 내린 스스로의 결론이기 때문이다. 나는 미치도록 세련된 서양의 수사학보다 질박하고 어눌한 동양의 한마디가 훨씬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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