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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명 <대구미술관 학예실장> |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작가 칼 안드레가 1966년 우리말로 치면 ‘작품 번호 8번, 가치 있는 어떤 것(Equivalent Ⅷ)’이라는 작품을 내놓았을 때 세상은 뒤집어졌다. 마르셀 뒤샹의 소변기(1917)나 피카소의 황소 자전거(1942) 못지않게 논쟁적이었다. 벽돌더미를 직사각형 모양으로 쌓아 올렸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영국 테이트 미술관에서 이 작품이 전시되었을 당시 이 작품은 수많은 이론가와 전문가들을 당혹시켰고 그들은 어떻게 해석할지 고민했다. 칼 안드레는 이미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였지만 그의 작품을 설명해줄 어떠한 이론의 틀도 당시에는 구비되지 않았다. 미학적으로 모방론, 표현론, 형식주의 등 여러 이론적 근거를 대도 신통치 않았다. 마이클 프리드가 1년 후 ‘미술과 대상화(Art and Objecthood)’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옥토버 그룹의 수장 로잘린드 크라우스 역시 1986년이 되어서야 ‘아방가르드의 독창성(The Originality of The Avant-Garde)’을 발표했다. 그러나 여전히 칼 안드레를 위시한 난해한 작품들을 해석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전통적 미학이 예술 설명의 역할을 제대로 못했을 때, 미국 출신 철학자 프레드릭 제임슨은 우연히 LA에 있는 웨스틴 본아벤투라 호텔에 들렀다고 한다. 호텔 입구는 찾기도 어려웠으며 매우 복잡한 구조였기에 오히려 사람들을 어지럽혔다. 그는 이 호텔을 보고서 “모든 것을 자근자근 씹고 갈면서 혼돈의 도가니로 만드는 맷돌”이라고 비유했다. 이 맷돌에 갈려서 “글로벌 세계는 더욱 다양해지며 담론에 구심력은 탈락된다"고 말했다. “개인의 주체성 역시 상실을 면치 못한다"고 예견했다. 프레드릭 제임슨은 이러한 현상을 ‘커다란 호텔에서의 실종’이라고 불렀다.
이 실종의 시대는 지금까지 이어진다. 현대미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세계 대표 20대 미술관의 과거 10년간의 전시를 분석해보면 된다. 그러나 이 미술관들의 일관된 공통분모는 잘 보이지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 담론 이후에 포스트 식민주의 담론을 끌어들여서 비서구권 모더니즘을 분석하거나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이론 모델이 개발되기까지 시간벌이를 한다. 시간벌이를 위해서 대개 자국민 모더니스트를 대대적으로 부각시킨다. 미술관들은 방향과 철학을 내놓기보다 자본의 득실을 따져 묻기 시작했다.
서구는 2천500년 축적된 모든 철학을 소진했지만, 우리 동양은 아직 꺼내지도 않았다. 첨단기술, 서구의 이성주의가 극을 달려 발전했지만 지금 허무주의와 소외감으로 지구촌은 신음한다. 내면의 도덕과 한 점 부끄럼 없는 자아로부터 도출시키는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이제 우리가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다.
이진명 <대구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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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커다란 호텔에서 실종된 우리](https://www.yeongnam.com/mnt/file/201812/20181224.01024082118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