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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와타 쓰요시<미술작가> |
1999년 9월 나는 대학원 특별연구생으로 경북대에 유학왔다. 1년간의 교환 유학이다. 그때까지 열심히 한국 학생들과 교류했지만 한국어는 전혀 못했다. ‘전혀’는 아니었다. 숫자는 5까지 헤아릴 수 있었고 “처음 뵙겠습니다”는 못해도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는 할 수 있었다. 또 낯가림이 심하고 사교성이 없었다.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게 당시의 걱정거리였다.
유학하면 언어는 자연스럽게 배울 거라고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말을 못하면 재료도 도구도 살 수 없는 것이다. 일본에서 가져온 책은 대학 작업실에 있던 ‘2주 만에 배우는 조선어’라는 책이었다. 그 책을 보고 있으니 “너는 어학공부를 하러 왔느냐!”라고 지도교수의 꾸중을 들었다. 같이 유학 온 음악과 학생이 부러웠다. 바이올린만 가져와 바이올린을 들고 귀국하면 된다. 어쨌든 나는 한국어로 생각하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숫자를 5까지밖에 모르는 정도니까 나의 사고능력은 4세 아이 정도가 되었다. 인간은 언어를 가지고 사고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실감했다.
생활만으로 자연스럽게 언어가 습득되는 사람은 상당히 머리가 좋거나 어린아이뿐이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어순이 비슷하다. 단어와 문법을 외우면 된다. 그때 내가 실천한 가장 효과적인 학습방법은 술 마시는 것이었다. 우선 술 약속을 했다. 그리고 약속시간 2시간 전부터 단어와 문법을 최대한 머리에 집어넣고 술자리에 갔다. 낯을 많이 가리는 나는 처음에는 아무 말도 못했다. 하지만 점점 취하면 잠재된 단어와 문법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숙사에 돌아올 무렵에는 만취 상태였지만 다음날에는 단어와 문법이 머릿속에 확실히 남아 있었다.
대학에 있었던 라디오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루에 10시간 라디오를 들었다. 라디오를 듣기 시작한 당초는 하루 종일 같은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그 이후로는 퀴즈 방송인 것 같다, 교통정보인 것 같다고 조금씩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이런 노력과 주위 사람들 덕에 2000년에 나의 사고능력은 중학생 정도로 성장했다.
교환 유학 1년간은 즐겁고 힘들고 아쉬움이 남았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작품과 전시였다. 나는 교환 유학 때 2번의 개인전을 열었는데, 그 2번의 전시는 내가 학생 때 연 7번의 개인전 중에서 가장 만족스럽지 못한 전시였다. 그 이유를 당시 나는 환경에 적응하는 데 1년이란 기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귀국해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다시 한국에 오기로 결심했다.가와타 쓰요시<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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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교환 유학](https://www.yeongnam.com/mnt/file/201901/20190128.01022075604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