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나도 고양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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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12  |  수정 2019-02-12 08:08  |  발행일 2019-02-12 제25면
[문화산책] 나도 고양이로소이다
박현주<달성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인간의 관점에서 몇 평의 공간 안에서만 살아가는 고양이의 삶은 단조롭다. 그러나 보기와 다르게 고양이의 일상은 놀랍고 흥미롭다. 인간의 경우 한정된 좁은 공간에서만 사는 건 두 부류뿐이다. 형의 집행을 받고 구금 중인 수감자, 병상 위에서만 생을 유지할 수 있는 환자로 둘 다 자유를 온전히 누릴 수 없는 상태다. 자유의지가 존엄성과 연결되는 인간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공간이 고역이지만 고양이는 다르다. 평생을 집 안에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 여유로운 산책 놀이를 한 후 호랑이인 척 야성도 표출하고, 발라당 배를 까고 누워 낮잠을 즐긴다. 택배가 오면 만사를 제치고 달려와 상자를 열어 굴릴 만한 물건이 있으면 호날두인 양 축구를 즐긴다. 날 좋을 때면 열린 창문으로 살랑살랑 불어오는 계절 내음을 맡으며 턱을 괴고 지나가는 인간들을 구경한다. 무엇보다 매사에 집사(고양이의 반려인)의 바람대로가 아니라 자신이 결정한 대로 행동한다. 이 피조물을 관찰하노라면 그 충실한 삶의 태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나쓰메 소세키가 인간의 허점을 풀어내는 매개체로 고양이를 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고양이는 맹목적이지 않고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주체성이 뚜렷한 존재다. 무엇보다 관심과 사랑을 애타게 바라지 않는다. 내키지 않는 일은 어떤 회유나 협박에도 굴하지 않는다. 사람 아닌 동물이 선비 급의 지조를 갖춘 탓일까, 한국에서 고양이는 요물로 낙인 찍혔다. 유독 우리나라에 충격적인 고양이 혐오 범죄가 빈번한 이유다. 아일랜드에는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을 조심하라는 격언이, 미국에는 낯선 고양이와 친해질 수 있다면 언제나 운이 좋을 것이란 속담이 있을 정도로 고양이에게 호의적인 편이다. 물론 고양이에 대한 호불호는 개인의 취향 문제겠으나 이런저런 기존의 선입견에 의해 판결을 내렸다면 한 번쯤 재평가를 바라는 바다.

고양이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히지 않는, 현재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살아간다. 인간에게는 꽤 많은 수행이 필요한 일이다. 과학적으로는 신피질이 적어서 그런 것이라지만, 인간의 우월감을 내려놓는다면 고양이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복합시제의 복잡성에 사로잡힌 인간이 현재를 직시하는 고양이의 눈을 바라보면 잠시 바늘로 찔린 듯 ‘뜨끔’하다. 인간은 고양이와 달리 걱정거리를 힘겹게 끌고 다니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위선과 가면을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양이에게는 당당한 기품이 있다. 내로라하는 예술가와 명사들이 예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이에 덧붙여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음악과 고양이’라고까지 한 바 있다. 신년에는 멋대로 뻗어가는 신피질을 달래어 현재에 충실해보리라. 나도 고양이로소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박현주<달성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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