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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신<작곡가> |
나이가 들면서 TV나 인터넷을 통해 쏟아지는 각종 뉴스를 찾아보는 횟수가 부쩍 줄었다. 한때이긴 하지만 20대 시절엔 세상 돌아가는 일을 하루라도 모르면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신문을 매일 보며 분노하곤 했던 기억이 있다.
얼마 전 오랜만에 함께한 옛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작은 논쟁이 있었다. 조용한 소도시에서 시를 쓰고 있는 J, 학원 강사 후배 P,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작은 바에서 술잔을 기울이다 P가 친지의 장례식장에 다녀온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는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게걸스럽게 먹던 누군가에 대해 자신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가까운 사람이 죽었는데 밥이 넘어가는 것도 신기하지만 어쩜 그렇게 후루룩 소리를 내며 며칠 굶은 사람처럼 먹을 수가 있는지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때였다. 한참을 조용히 듣고만 있던 J가 뭐가 그러냐며, 고작 먹는 걸로 사람을 판단하느냐고 우리를 나무랐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심연이 우주보다 까마득한데 고작 먹는 것으로 사람을 단정짓느냐는 것이었다. 단편적인 것들이 모여서 한 사람을 형성하는데 그걸 가지고 판단하지 않으면 대체 무얼 가지고 판단하느냐는 P의 반박과 거기에 대응하는 J의 또 다른 일장연설을 들으며 순간 잠시 정신이 아득해졌다.
나는 왜 그 논쟁에 적극적이지 못했을까.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세상 모든 일에 방관자가 되어가는 것 같다. 어지간한 일에는 중립을 지키는 게 편해졌고,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뉴스들을 봐도 예전처럼 분노하지 않는다. 덕분에 심리적인 안정은 어느 정도 보장받았지만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늘 따라다닌다.
며칠을 이런저런 생각에 사로잡혀 보내다 수다쟁이 친구 K를 만났다. 커피나 한잔하면서 요 며칠 혼자 묵혀두었던 속 이야기를 다 털어놓자 싶었다. 내 얘기를 한참 듣고만 있던 그녀가 피식 웃으면서 던진 한마디는 ‘그게 뭐 어때서’였다. 그녀는 남자친구와의 ‘연애’를 빗대어 말을 이어갔다. 연애 초창기에는 죽을 것처럼 서로를 갈망했고 그 갈망이 충족이 안 되면 할퀴고 싸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에게 익숙해져서 이제는 연애 감정도 무뎌졌는데 그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그녀의 주장은 무뎌짐도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이고, 다만 시간이 사랑의 방법을 바꿔놓았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카페를 나오며, 그저 묵묵히 바라보는 것도 사랑이 아닐까 나 자신을 위로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뭔지 모를 허전함이 남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정은신<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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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무뎌지는 일](https://www.yeongnam.com/mnt/file/201902/20190214.01020074045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