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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주<달성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
‘아,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는구나. 힘으로 억누르는 시대가 가고, 도의가 이루어지는 시대가 오는 구나. 지난 수천 년 갈고 닦으며 길러온 인도적 정신이 이제 새로운 문명의 밝아오는 빛을 인류 역사에 비추어 시작하는구나.’ 1919년 3월1일 낭독된 독립선언서의 내용이다. 제도적으로는 이 내용이 실현된 것 같지만, 진정으로 도의가 이뤄지는 시대인지에 대한 질문은 선뜻 대답하기 힘들다. 사회 구석구석 갑질이 만연하고, 신자유주의의 그늘 아래 자본의 신성화가 이뤄지는 현실 탓이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에서 우러나오는 인간성은 어디로 갔을까. 티끌 만한 힘에 취해 타인을 휘두르고 억압하는 전근대적 발상은 이제 그만 놓아버려야 한다. 100년 전 우리가 그토록 벗어나고, 되찾고자 했던 것이 뭔지 안다면 말이다.
모두가 민족주의적 사명감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우리에겐 빚이 있다. 자유와 개인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아무 대가 없이 물려받았다. 기록만으로도 아픔이 느껴질 만큼 모질고도 모질었던 35년의 세월동안 생명을 산화하며 맞선 이들이 뜨겁게 지켜낸 것이다. 역사가 미처 다 담아내지 못할 만큼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의 결실을 우리가 누리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활동한 역사적인 장소는 국경 밖에 주로 위치해있어 관심이 필요하다. 여러 군데였던 임시정부 청사는 중국의 통제 하에 있거나, 흔적이 사라진 곳도 있다. 상해 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이었던 최재형은 러시아에서 성공한 대부호로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쏟아 부었다. 일본군에 의해 생을 마감하기까지 살았던 그의 고택은 오랜 기간 방치되었다. 몇 년 전 찾아가 본 그곳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채 덩그러니 있었다. 쓸쓸한 그 모습이 마치 우리의 역사에 대한 태도 같았다.
지금의 현실은 ‘헬조선’이라지만 삶을 유배지로 만들기에 우리의 뿌리는 너무 뜨겁다. 35년의 고통이 반만년의 역사를 가릴 수는 없는 일이다. 홍익인간이라는 이타적인 건국이념을 현 시대에 맞는 정신과 문화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빚을 탕감할 우리의 자세다. 고귀한 목숨들의 뜻을 기릴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 다가오고 있다. 민족사의 비극을 좀 더 입체적으로 살펴 볼 때다. 독립운동가와 매국노는 특별한 이들이 아니었다. 일제강점이라는 시대적 사건이 아니었다면 평범한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했을 것이고, 일신의 안위와 조국을 두고 선택의 기로에 설 일도 없었을 일이다. 현재의 우리에게 이 의미가 유효한 것은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이다. 유사한 형태로 우리 삶 속에서 이 질문과 선택은 계속된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것’이라는 독립선언서가 아직도 살아있다. 당신의 채무는 안녕하신지.
박현주<달성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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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채무에 안부를](https://www.yeongnam.com/mnt/file/201902/20190226.01025081427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