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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진나<도시야생보호구역 훌라 대표> |
우리가 여행을 떠날 때 그곳은 어딘지 모르게 미지의 곳이고, 여기와는 다르며 어떤 새로운 영감을 줄 것이라 기대하게 된다. 그것은 낯섦에 대한 기대이며, 그래서 낯설다는 것은 설렘의 다른 말인지도 모른다.
낯선 곳에 다다름이 설렘과 어떻게 같은 말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가 낯선 곳에서야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코 자기 눈으로는 자기를 볼 수 없듯 익숙한 문화 속에서는 자신의 문화를, 자신을 알 수 없다. 낯선 곳에서 나 이외의 모든 것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집중해 있는 그 순간에야 오롯이 자신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여행은 이전에 몰랐던 ‘나’를 만날 수 있는 설레는 떠남이다.
여행자의 마음가짐이란 그런 낯선 것과 기꺼이 조우하며 타자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것, 지금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것도 즐길 수 있다는 태도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여행자가 기대하는 낯섦은 ‘불편’하더라도 ‘수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낯선 곳’이라 해도 누군가에겐 일상의 터전이다. 그들에게 외부인들이 감탄하거나 신기해하는 모든 것들은 그저 ‘익숙한’ 삶의 일부이다. 너무 가까이 붙어있고, 자신이 그 일부일 때 스스로는 그것을 볼 수 없는 법. 하지만 이를 뒤집어 보자면, 어떤 일상의 공간이든 그곳은 누군가에겐 ‘낯선 곳’이란 말도 된다. 즉,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같은 공간도 다른 곳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 멀지 않은, 늘 다니던 곳에서 내가 몰랐던 것들을 찾는다면, 그만큼 설레는 일이 있을까. 갈라진 아스팔트 틈 사이로 돋아난 풀이, 여기에 생명이 있노라고 온 몸으로 표현할 때, 그 감동은 천천히 아스팔트 도로를 살핀 어느 누군가에게만 전달될 수 있다. 시속 30㎞의 버스 안에서 창밖을 보는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을 직접 그 길을 걷는 사람은 볼뿐더러 오감으로 몸에 새긴다.
지난 몇년간 북성로를 비롯하여 이 도시의 골목길을 오가며 지도에 담고 오랫동안 그곳에서 삶을 일궈온 이들을 만나며 이야기도 두터워졌고 생각도 많아졌지만 그러니 누구에게도 내가 걸었던 길에 대해 쉽사리 말할 수가 없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하더라도 그 경험에 대해 온전히 담아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앞으로 몇주간 이 코너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 지극히 주관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어쩌면 이율배반으로 가득 차 있을지 모를 그런 산책의 단상들을.안진나<도시야생보호구역 훌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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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우리는 어떻게 낯선 곳에 도착하는가](https://www.yeongnam.com/mnt/file/201903/20190306.01023075923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