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때 나는 거기 있었다. 21세, 어리다면 어리고 먹을 만큼은 먹은 나이에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분명 나는 거기 있었다. 아니, 거기 있었다고 믿었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거기 다시 간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엇나간다.
14년 만에 다시 밟은 인도, 그곳에서의 14일은 내게 어긋남의 연속을 선사했다. 경험에 면역력이 생겼기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그 미묘한 차이의 한가운데에는 14년간 수없이 되풀이되었던 기억의 결정체들이 자리했다. 그리고 조금은 굳어버린 나의 마음이 기억의 풍경에 헛발질을 해댔다.
바라나시에서 보트를 타고 강을 건너 모래섬에 닿았을 때도, 일몰을 바라볼 때도, 화장터를 지날 때도, 다음날 해돋이를 볼 때도 왠지 모를 담담함 속에서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니었다. 되풀이하는 경험의 순례 속에서 나는 이전과 달라진 나를 확인할 뿐이었다.
인도에서 만난 여행자들은 하나같이 천천히 멍 때리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처음 며칠은 이들을 보는 내내 마음이 답답했다. 어딘가 나사 빠진 것 같은 그 모습에 초조함을 느꼈다. 그러다 점차 그 시간의 여울에 익숙해지면서 잊고 있던 감각이 깨어났다. 나도 한때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먼 산을 보며 시간을 때우던 날들이 있었음에.
21세의 나도 그들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무표정하게 가만히 앉아(혹은 누워) 별다른 목적도 없이 내용도 없이 느리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야말로 그때 인도에 있었던 나였다. 밀려드는 낯선 풍경 속에서, 그 혼란 속에 자신을 놓고 미끄러져 들어가곤 했다.
멍 때리는 시간에 영혼이 자란다던,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그래서 몸이 자라는 것과 같이 영혼의 크기와 깊이도 어린 시절에 성장하는 것이라 했다. 어느덧 성장이 멈추고 어른이 되어버린 현실에, 그래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이 느낌에 나는 절망해야 하는 걸까.
다행히 그렇진 않다. 그때의 자신을 다시 만날 수 없지만 그때를 지나 지금에 왔으며 그래서 우리는 결코 같은 장소에 두 번 갈 수 없다는 아이러니는 인문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그곳에 자리한 기억의 장치는 그대로일지라도 ‘나’라는 존재는 늘 기억의 함수에서 변수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억은 매번 갱신되며 새롭게 재구성된다. 나라는 여과망을 거치면서 현실은 어긋난 장소로 나를 데려가는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여행의 묘미이고 어긋남의 미학인지도 모른다.
안진나 (도시야생보호구역 훌라 대표)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산책] 어긋남의 미학](https://www.yeongnam.com/mnt/file/201904/20190403.01023081110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