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어느 귀갓길

  • 뉴미디어부
  • |
  • 입력 2019-04-10  |  수정 2019-04-10 08:24  |  발행일 2019-04-10 제23면
[문화산책] 어느 귀갓길
안진나 <도시야생보호구역 훌라 대표>

처음엔 까만 봉지인 줄 알았다. 바람이 많이 부나 했다. 혹시나 싶어 갓길에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렸다. 그 까만 형체는 도로 위에서 최후를 맞이하던 까만 고양이였다. 그 녀석은 이내 움직임을 멈췄고, 힘없이 바닥에 가라앉았다. 차를 돌려 다시 사무실로 향했다. 호미와 모종삽, 신문과 비닐을 챙겨 다시 현장으로 나섰다. 비상깜빡이를 켜고 조심스레 사체를 추슬렀다. 이전에 봐 두었던 언덕으로 향했고, 친구가 망을 보는 사이 열심히 땅을 팠다. 누가 볼세라 급히 조촐한 무덤을 만들고 ‘좋은 곳에서 다시 만나자’를 읊조리며 자리를 나섰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기에 그리 당황하진 않았다. 하지만 늘 그들을 보내줄 곳을 찾는 건 마땅치 않다. 현행법에 따르면 동물의 사체를 임의로 투기·소각하거나 땅에 묻는 행위는 불법이다. 지자체별로 로드킬 접수처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 사후처리과정은 여의치 않다. 우리나라에선 의료폐기물로 처리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동물 사체 상당수가 쓰레기봉투에 넣어져 처리되거나 불법적으로 암매장된다. 이는 반려동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동물화장장이나 장례식장이 점점 늘어가는 추세라고는 하나, 혐오시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입장과 행정당국의 미비한 조치로 지역사회에서 갈등을 빚는 사례가 빈번하다. 하지만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죽음에 대한 예우는 어떤 사회든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마찬가지로.

길 위에서 살다 죽는 동물들 또한 그러하다 믿는다. 특히 인간의 과오로 인한 죽음에는 마땅한 책임이 따라야 한다. 한때는 산천이었고, 논밭이었던 곳들이 아스팔트 도로가 되고, 육중한 차량들이 그 길을 차지하면서 무심한 속도에 목숨을 잃는 생명들을 목도할 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외면이 아니라 어떤 행동들이다. 최소한의 배려와 조치라도 취해야 한다. 길 하나를 건너더라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그들을 생각하노라면, 당장 차를 팔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편리에 길들여진 나는 차는 아직 포기 못하고, 최대한 도로를 잘 살피며 저속으로 달리는 게 전부다. 트렁크에 몇몇 연장을 챙겨 다니며 언제라도 마주칠 그들이 적어도 도로 위에서 가루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 정도가 지금의 내 수준이다.

그날 피치 못할 불법을 저지른 친구와 나는 시인과 촌장의 ‘좋은 나라’라는 노래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다시 만난다면 슬프던 서로의 모습들을 까맣게 잊고 다시 인사할지도 몰라요. 좋은 나라에서 그 푸른 강가에서…’ 인간뿐 아니라 모든 동물, 모든 생명이 제대로 삶을 누리고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가 존중되는 그런 나라가 우리에게도 올까? 그건 우리에게 달린 문제다.
안진나 <도시야생보호구역 훌라 대표>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