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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밤 10시 즈음, 아내가 일을 하는 학원가로 퇴근 마중을 가면 불야성인 각 학원 앞마다 자가용이 줄지어 수업에 지쳐서 나오는 아이들을 태우는데, 비가 내리는 날에는 도로가 아수라장이 되었고, 그 사이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걸어 귀가하거나 학원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서성이고 있다. 하나둘 반갑게 아이를 태우는 운전자는 대부분 엄마들이다. 하지만 정말 아름다운 그림은 따로 있다. 짐을 싣는 낡은 자전거에 등교하는 고등학생 딸을 태우고 도로 가장자리를 아슬아슬 달리는 늙은 아버지의 얼굴은 흐뭇하고, 허리를 감싸 안고 야윈 등에 고운 얼굴을 기댄 딸은 봄꽃이다. 어디에 사는지 모르지만, 그처럼 아름다운 부녀는 세상에 흔하지 않다.
부모들의 그런 열성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은 정부의 각종 지원대책에도 불구하고 해를 거듭할수록 더 심화되고 있는 청년실업문제에 닿아 있다. 지방 상위권 대학과 서울의 일류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준비생으로 지내거나 심지어 강박을 못 견뎌서 세상을 등지기도 한다. 정책입안자들은 청년들의 대기업과 공기업, 공무원을 선호하는 눈높이가 문제라고 지적을 하는데,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나마나 한 소리지만, 제한된 일자리에 고학력을 너무 부추긴 정부정책의 실패일 뿐이다. 거기다가 건설과 제조생산현장도 이주노동자들까지 겹쳐서 극한 육체노동을 요하는 공장 말고는 이미 포화상태가 된 지 오래다.
최근에는 급격한 자영업의 퇴조와 소비저하로 알바 일자리도 귀한 실정이라 직종을 가리지 않는 알바는 기본이고 취업이 막연한 꿈인 청년들의 무너짐을 보며 치열한 대학입시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의 피곤을 덜어주려고 작은 집 한 채나 전세 가격의 최고급 자가용으로 아이들을 등교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그에 비해 아이에게 마음껏 해주지 못하는 부모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시리다. 아니길 바라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어서 통학하는 다수의 아이들이 빈부격차의 상처를 받거나 비판의식 없이 상속부자의 삶을 부러워해도 무어라 탓할 수 없고, 전혀 부족함이 없는 여건에서 공부하는 부잣집 아이들이 취업의 가능성이 보다 높은 일류 대학에 진학하는 현실은 당연한 것이며, 고급 자가용으로 등하교를 시켜주는 부모들을 무조건 나쁘다고 몰아세우는 편협함도 옳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범한 희망을 절대 놓지 말아야 한다. 아버지의 낡은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늦둥이 딸이 더 예쁘고, 공부도 그 누구보다 잘할 거라 믿는다. 아니, 공부를 못하면 어때. 꿈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반드시 이루어진다. 내일도 부녀는 낡은 자전거를 타고 행복한 꿈길을 날고, 우리는 참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보며 사는 일에 힘을 얻을 것이다.
김종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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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낡은 자전거가 나는 꿈](https://www.yeongnam.com/mnt/file/201904/20190412.01016074915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