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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필자는 지인의 부탁으로 삼우제의 집례를 본 적이 있다. 옛말에 ‘도랑 하나만 건너도 남의 집 제사 집례는 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문중마다 예법이 다른 까닭에 함부로 남의 집 예에 나서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데 상례의 경우는 예외다. 상을 당한 이들은 슬픔으로 경황이 없다. 그런 까닭에 먼 친척이나 예를 잘 아는 이를 호상, 상례(相禮)로 세워 예를 치르는 것이다. 삼우는 상례 기간 중의 제례, 즉 상중제례다. 따라서 남의 집 삼우에 집례를 보는 것은 결례는 아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장사 이후의 예법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유교의 ‘우제’와 불교의 ‘49재’다. 우제에 해당하는 것이 삼우다. 삼우는 한자로 ‘三虞’라고 쓴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삼우를 ‘삼오’ 또는 ‘사모’라고도 한다. 삼오는 장사 이후 3일·5일마다 행한다는 것에 연유한 것 같고, 사모는 글자 그대로 고인을 사모한다는 것에 연유한 듯하다. 설명은 그럴듯하지만 사실 이 둘은 잘못된 표현이다. 왜냐하면 삼우는 초우, 재우에 이어 세 번째 행하는 우제라는 뜻에서 삼우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2천~3천년 전에 기록된 ‘의례’ ‘예기’같은 유교경전에도 우제가 언급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우제가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예법이기에 3천년의 세월을 살아남았을까.
우제의 ‘우’자는 위로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제는 위로를 주로 하는 제사다. 일반적으로 몸과 마음이 분리되는 것을 죽음이라고 하는데, 유가에서는 이때 혼승백강이라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본다. 방금 전까지 함께 했던 혼과 백이 분리되어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아래로 내려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유가에서는 이러한 혼승백강 상태에 있는 혼을 다음과 같이 인식했다. ‘지금 저 혼은 얼마나 불안하고 무서울까? 평생을 함께 했던 백이 저 홀로 어두운 땅 속에 묻혀버렸으니 말이다. 이제 저 혼은 무엇에 의지해야 하나? 두려움에 떠는 저 혼을 어떻게 하면 위로할 수 있을까?’
그렇다. 두려움에 떨고 있을지도 모를 저 혼을 위로하기 위해 우제를 지낸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서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우제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우제는 삼우가 아닌 초우다. 초우는 장사 당일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곧장 모시는 제사다. 비록 슬픔으로 경황이 없는 상중이지만 두려움에 떠는 저 혼령을 위해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서둘러 초우를 지내는 것이다. 이처럼 혼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와 지내는 제사라는 뜻에서 초우를 ‘반혼(返魂)’이라고도 한다. 여하튼 초우는 장사 당일 지내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교통사정이 좋지 않던 시절에는 중도의 여관에서라도 반드시 초우를 모셔야 했다.
송은석 (대구문화관광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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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삼우, 삼오, 사모](https://www.yeongnam.com/mnt/file/201904/20190425.01021074447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