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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문화의 시대가 도래했다. 고집스레 지켜온 뚝심 있는 문화가 있는 반면 문명의 발달에 따라 수없이 변신해온 카멜레온 같은 문화도 오늘을 살아간다.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고, 미래에도 있을 문화의 카테고리는 인간의 삶 그 자체로 응집된다. 이처럼 인간 삶의 길잡이 노릇을 해온 예술은 시대의 방랑자처럼 시공간의 무대를 제멋대로 노닐며 생명을 이어간다.
요즘 도시재생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것도 문화적 옷을 입히려는 도시재생이 인기를 끈다. 도시재생에 두 팔 걷어붙인 곳마다 잘나가던 한 때의 화려한 추억을 간직한 곳이다. 시대의 흐름에 떠밀려 재생의 수혈을 받을 만큼 노쇠해진 몸에다 문화적 수식어를 붙여 부활을 도모하려 한다. 자칫 문화적 도시재생을 개발과 산업 언저리에 문화를 살짝 끼워 넣는 것으로 착각하면 오산이다. 문화의 주체인 예술이 빠지고 상인과 개발업자가 키(key)를 거머쥔 도시재생은 앙꼬 없는 찐빵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극은 문화처럼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이고, 살아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역사와 전통을 토대로 자란 문화적 공간에다 희소적이고 차별화되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은 다분히 연극적이다. 뻔한 내용의 공연에는 관객이 몰리지 않는다. 무대공간을 도시재생 공간으로 확장하고, 아련한 추억을 소재로 삼아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면 하나의 연극 작품과 다를 이유가 없지 않는가! 폐철로가 공중정원이 된 뉴욕의 하이라인이나 소의 도축장이 문화공간으로 변신한 상하이의 1933 라오창팡처럼 도시재생에 성공한 여러 나라의 선진 사례를 보면 발상전환의 키는 언제나 예술가들이 쥐고 좌지우지했다. 시공간을 응용해 자기만의 색채를 만들어내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바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김천은 올해로 시승격 70주년을 맞는다. 같은 해 시로 승격된 수원, 전주, 포항 등에 비하면 유일하게 쪼그라든 도시이다. 경북 내륙의 교통중심도시답게 상권이 융성했던 도시였지만 지금은 인구 14만의 소도시로 전락된 지 오래다. 도시재생의 바람을 타고 최근 들어서야 리플레이(REPLAY) 버튼을 누르려고 절치부심 중에 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개발이익에 눈독 들이거나 예술인을 더부살이 역으로 전락시킨 도시재생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이야기의 옷을 입히려면 먼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순리이다. 그 이야기의 착상은 빠른 현대의 시계바늘보다 더 빠르거나 아니면 아주 느린 시계추를 생산해야 차별성과 경쟁력을 담보한다. 기왕에 시작하려면 가랑비에 옷 젖듯 하지 말고 과감하게 들이대라 요구하고 싶다. 문화 시대의 심장은 도전과 모험정신일 테니 말이다.
노하룡 (극단 삼산이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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