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비도 감당못해 가족 동원…쪽잠·과로에 시달려

  • 명민준
  • |
  • 입력 2019-07-11 07:13  |  수정 2019-07-11 07:46  |  발행일 2019-07-11 제3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그늘] (상) 신음하는 자영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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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대구 중구 동성로의 ‘OO 포차’에서 만난 업주 A씨가 점포 내에 설치된 계산대 스크린으로 매출장부를 바라보며 고민에 빠져있다. 매출 감소에 인건비 부담까지 늘면서 A씨는 지난 1월부터 알바 고용을 포기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대한민국을 바꿔놓았다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거기에는 명과 암이 교차한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사람들은 안정적인 ‘정식 직원’이 되면서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반면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는 높아진 임금을 감당못해 종업원을 내보내고 가족경영체제로 돌아서거나 아예 폐업을 선택했다. 자녀 학원비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식당 설거지를 하던 주부나 학비마련에 나섰던 아르바이트 학생에게도 최저임금은 저승사자나 마찬가지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바꾼 2년간의 현장을 3차례에 걸쳐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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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 5명 미만의 업장을 운영하는 소상공인 자영업자에게 현 정부의 인금인상책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업계 실정에 비해 최저임금 상승 속도가 너무 가팔랐기 때문이다. 특히 전체 인구 중 자영업자 비중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대구는 최저임금 인상의 직격탄을 맞았다. 크게 발품팔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자영업자들의 신음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대구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볼멘소리부터 들어봤다.

◆엎친데 덮친 최저임금 인상

지난 2년 동안 가파르게 인상된 최저 임금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의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다. 이들의 벼랑끝에 몰린 삶은 통계청이 매월 발표하는 ‘월별 고용동향’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통계청은 2018년 7월 고용동향을 발표하면서부터 ‘종사상 지위별 취업자-비임금근로자 현황’ 항목에서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이하 고유자) 및 ‘고용원없는 자영업자’(이하 고무자) 현황 항목(전국 기준)을 추가했다.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는 매월 고유자가 증감세를 보였고 고무자는 줄었다. 일반적인 경기 흐름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지난해 12월부터는 고유자가 급격히 줄어드는 대신 고무자는 늘어나는 형태로 역전됐다. 올들어 꾸준히 줄고 있는 고유자는 지난 6월 기준 153만6천여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166만2천여명)과 비교해 7.6%나 감소했다. 반면 고무자수는 6월 기준 417만여명으로 2018년 6월(403만9천여명)에 비해 3.2% 늘었다.

중소벤처기업부 통계에 따르면 대구지역 자영업체(소상공인)는 17만3천770여곳(2017년)이며, 이 중 음식업 및 주점업체는 17%에 해당하는 2만9천300여곳이다. 대구 소상공인 5명 중 1명이 음식점이나 주점을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다른 업종에 비해 최저임금 상승의 영향을 더 받는 업종이다보니 대구의 최저임금 상승고통이 더 크다.


대구 소상공인 5명 중 1명 음식·주점업
다른 업종에 비해 임금 상승 영향 더 커
작년말부터 고용원 없는 자영업 증가세
변종 인력소개소 등장 인건비 압박까지
자구책 찾지못한 업주들 결국 폐업수순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66㎡규모의 실내포차를 운영중인 A씨(여·36)는 올초부터 아르바이트 근로자(이하 알바) 고용을 포기했다. 지난 8일 가게에서 만난 A씨가 보여준 2016년부터 월별로 정리해둔 매출장부의 인건비 항목은 2019년 1월부터 비어있었다. 장기간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인해 수익이 크게 발생하지 않는데, 알바비까지 감당하는 것이 어려워서 지난해말 결단을 내렸다. A씨는 알바를 쓰는 대신 남자친구의 도움을 받고 있다. 요즘 자영업계에서 흔히 보이는 가족 운영 형태다. A씨는 “우리 점포 정도면 월 평균 150만원에서 많게는 200만원 수준으로 수익이 발생한다”면서 “그런데 알바를 쓰면 130만원 가져가기도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알바를 쓰지 않는 A씨와 남자친구 B씨는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경기불안으로 매출까지 줄면서 두 사람은 낮 시간을 활용해 투잡을 뛰고 있다. 하루 4시간씩 쪽잠을 자면서 일하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폐업벼랑에 내몰린 자영업자

A씨 같은 주점업 자영업자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술값 마진율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 음식점의 사정은 다르다. 재료값을 일일이 계산해가며 매출을 조정하는데, 최저임금이 급상승하면서 대처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구 동구에서 돈가스 전문점을 운영중인 C씨(29)는 “식사 시간대에 손님이 몰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알바를 쓸 수밖에 없다”면서 “그렇다고 손님이 예전보다 증가한 것이 아니기에 알바의 최저임금 상승분을 메울 수 없다”고 말했다. 음식값을 쉽게 올릴 수도 없다. C씨는 “장사 해본 사람은 알지만 손님들이 밥값이 500원만 올라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대구는 음식점도 유난히 많은 편인데, 손님입장에서는 다른 가게에 가면 그만이니 음식값을 함부로 올리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면서 신규 창업자들은 1인 운영이 가능한 배달전문 음식점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기존의 음식점 업주들도 배달전문으로 영업 방식을 전환하고 있다. 문제는 배달전문점조차 인건비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배달 음식점은 주로 대행 업체에 맡기는데, 배달료가 3천원에서 5천원까지다. 업주가 배달료를 아끼기 위해 간혹 가까운 거리는 직접 나서기도 하지만, 알바를 쓰지 않을 경우에는 불가능하다.

대구 서구에 분식 배달 전문점을 차린 D씨(33)는 자신이 ‘사면초가’에 놓인 꼴이라고 하소연했다. D씨는 “배달 중심으로 영업해서 혼자 충분하다 생각했고 자리 잡으면 알바를 써서 직접 배달하거나 가끔씩 휴식도 취하려 했지만, 올해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계획이 깨졌다”고 말했다.

자구책을 찾지 못한 자영업자들은 결국 폐업하는 수순을 밟는다. 올해 집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현재 추세로 볼 때 지난해보다 늘 것으로 보인다. 폐업자 증가세는 2017년부터 나타났다. 국세청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전국 자영업자 폐업자수는 2015년 76만1천328명에서 2016년 73만9천420명으로 줄었으나 2017년 83만9천602명으로 급격히 늘었다. 2018년에도 83만7천714명이나 됐다.

◆변종 일자리 소개업체도 등장

최저임금 상승으로 힘든 자영업자를 울리는 변종 인력 소개업체까지 등장했다. 이들 소개업체는 임금인상 명분을 앞세워 인력 카르텔을 조직하고 주점업 및 음식업계 자영업자들의 경영을 더욱 어렵게 한다.

업종 특성상 주점업과 음식업은 요리사의 역량이 업체의 매출을 좌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용해 요리사를 자신들의 소개업체를 통해 공급하는 것이다. 오너셰프가 아닌 이상 업주는 요리사 채용에 좌우되고 소개업체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변종 인력 소개업체는 이 같은 약점을 파고들고 있다. 요리사 채용 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한 것은 역대 최대치의 임금인상이 이뤄진 지난해 1월부터다. 최저임금이 오르는 사회적 분위기에 맞춰 몇몇 요리사가 동료 요리사들을 불러들여 조합형태의 업체를 만들었다. 이들은 음식점이나 주점업주 입장에서 요리사를 찾는 것이 쉽지 않은 점을 노렸다. 요리사들은 변종 업체측에 월 10만원 정도의 회비를 내고 가입한다. 업체는 고용을 의뢰한 주점업 혹은 음식업주에게 회원으로 가입한 요리사를 소개한다.

이들 업체에 가입하는 요리사가 늘어나면서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요리사를 직접 고용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다. 이 점을 악용해 업체측은 음식업주들에게 요리사 임금을 더 높게 부른다. K소개업체는 최근 소속 요리사의 일당을 평일 기준(10시간)으로 16만원, 주말 기준 18만원을 책정해 놓았다. 소개업체를 통할 경우에 20일만 근무를 해도 요리사에게 유리하다.

대구시내 H음식점 업주는 “월급제로 요리사를 고용할 경우 숙련도 등에서 차등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300만∼400만원 정도를 주고 있다”면서 “그런데 소개업체 요리사를 쓰게 되면 100만원 정도의 지출이 더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음식점에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고 싶지만, 요리사들은 자신들이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소개업체를 선호하고 있어 쉽지 않다”면서 “앞으로도 상당수 요리사들이 소개업체로 옮겨가면, 지금보다 몸값이 더 오르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글·사진=명민준기자 minj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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