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그랜드 시덕션’ (돈 맥켈러·2013·캐나다)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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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29   |  발행일 2019-11-29 제42면   |  수정 2020-09-08
일상의 작은 행복을 되찾기 위하여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그랜드 시덕션’ (돈 맥켈러·2013·캐나다)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그랜드 시덕션’ (돈 맥켈러·2013·캐나다)

요 며칠 한가해서 좋았다. 아무런 압박감 없이 집에 있으니 행복했다. 한량처럼 어슬렁거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인생의 모든 애씀이 결국 이런 순간을 위해서가 아닐까 하고. ‘천국의 하루는 평범한 일상의 하루’라는 말처럼 우리의 모든 노력과 투쟁(?)이 결국은 아무 일 없는 평범한 하루를 얻기 위해서가 아닐까. 영화 ‘그랜드 시덕션’은 이런 일상의 행복을 얻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섬마을 어부들의 이야기다.

한때는 풍성한 어획량으로 남부러울 게 없던 캐나다의 외딴 섬마을. 하지만 더 이상 고기가 잡히지 않게 되자 생계가 막막한 어부들은 복지 수당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 자존심은 바닥이고 희망이 사라진 지 오래인 섬에 우연히 의사가 찾아오게 된다. 마을 주민들은 의사가 섬에 계속 머물도록 하기 위해 갖은 묘수를 짜낸다. 마을에 공장을 건설하는 조건으로 상주 의사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순박한 시골 어부들이 세련된 도시 의사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과정이 코믹하게 그려진다.

바닷가 마을을 담은 화면이 아름답고, 시종 코믹한 분위기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따뜻하다. 곳곳에 가득한 유머가 미덕인 이 영화는 시장을 비롯한 120명의 마을 주민들이 일치단결해 초대형 연극을 펼치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린다. 2004년 선댄스 영화제 관객상을 받은 ‘대단한 유혹’의 리메이크작(캐나다 퀘백 지역에서 만든 불어판)이다. 마을 이장 역 브렌단 글리슨의 연기가 좋다. ‘어바웃 타임’의 주연배우 돔놀 글리슨의 친아버지인 베테랑 배우다. 영락없이 깡촌 어부로 보이는 고든 핀센트도 정감이 넘친다. ‘어웨이 프롬 허’에서 줄리 크리스티와 부부로 나왔던 배우로, 영화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할리우드에서 맹활약중인 테일러 키치가 의사 역을 맡아 도회적인 매력을 뽐낸다.

영화 추천을 했는데 반응이 신통치 않은 경우가 더러 있다. 이 영화가 그랬다. 심각하지 않은 영화라 즐겁게 볼 거라고 추천했는데, 보고난 지인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영화는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으므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 영화를 그저 그런 영화라고 시시하게 여길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시큰둥한 반응이 유쾌하지는 않았는데, 시간이 흐른 뒤에야 얼마나 좋은 영화인지를 깨달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평범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가 얼마나 공감 가는 것인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 눈물겨운 노력을 그토록 우스꽝스럽게 그리다니, 그야말로 재기 발랄한 내용의 ‘웃픈’(웃기고 슬픈) 이야기인 것이다.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라, 일종의 블랙 코미디 같기도 하다. 성인용 동화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공장을 짓기 위해 결국은 뇌물을 주고서야 목적을 이룬 걸 보면 블랙 코미디가 맞는 것 같다.

1939년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 역의 주디 갈랜드는 ‘무지개 너머(Somewhere over the rainbow)’를 부른다. 아련하고 달콤한 목소리로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있는 이상향을 노래한다. 하지만 도로시가 마지막에 반짝이는 루비구두를 부딪치며 외우는 주문은 이렇다. “집만 한 곳은 없어요, 집만 한 곳은 없어요(There is no place like home)” 도로시가 말한 집이란 ‘그랜드 시덕션’의 마을 주민들이 그토록 소망했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평범한 하루일 것이다.

삶의 작은 행복을 뜻하는 ‘소확행’ 또는 ‘휘게’란 말이 유행하는 것은 그만큼 삶이 팍팍하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말대로 요즘은 ‘일상의 작은 것들이 대단한 시대이며, 그만큼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시대다’. 평범한 하루를 보석처럼 여기고 감사할 줄 아는 것, 이것이야말로 시대를 초월하여 변하지 않는 삶의 진리가 아니겠는가.

“인간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 세계를 여행하고 집에 돌아와 그것을 발견한다”라고 한 철학자 조지 무어의 말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리라.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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