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애의 문화 담론] 기복(祈福)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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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03   |  발행일 2020-01-03 제39면   |  수정 2020-01-03
美에서 부는 황금알 한류 'K 샤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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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庚子年) 새해를 맞아 팔공산에 오른다. 대우주의 기운을 팔괘(八卦)로 돌린다는 팔공산은 지구 인력(引力)의 원천이라는 풍설과 함께 민족의 영산(靈山)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인지 평소에도 팔공산의 정기를 받기 위한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새해 첫날의 해돋이나 음력 정월 대보름, 입시 철엔 갓바위 약사여래좌상의 영험을 얻기 위한 기도 행렬이 미어터지게 마련이다.

갓바위 동남쪽에서 대구 방면으로 떨어져 나온 산자락에는 봉황이 춤을 추고 불로불사(不老不死) 한다는 봉무동(鳳舞洞)과 불로동(不老洞)이 전설 서린 옛 이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러구러 팔공산 자락과 계곡 곳곳에는 종단의 본사(本寺)를 비롯한 말사(末寺)와 암자 등 절집도 많다. 게다가 개인사찰이며 촛불 기도처에 무속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굿당촌 등이 자그마치 1천400여 개나 촘촘히 박혀 있을 만큼 기복(祈福) 문화의 산실로 알려져 있다.

경자년 새해 맞아 팔공산 기도 행렬
자락마다 무속인 굿당촌만 1400여개
하루·한달·일년·평생 운세 보는 풍속
英, 한국 점성술시장 연간 4조원 분석


사주팔자에 좋은 외모·이름까지 바꿔
성형외과·법원 개명 신청도 문전성시

韓 토정비결·역술인과 상담 앱 개발
美서도 관심 커지는 샤머니즘 인문학


우리나라의 기복 문화는 세시풍속처럼 국민 정서 속에 깊숙이 스며든 속신(俗信·민간신앙)의 전승이라고 한다. 일종의 샤머니즘 인문학이다. 삶 자체가 고단한 데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어 하루 운세, 한 달 운세, 1년 운세, 평생 운세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액땜으로 치성을 드리는 속신, 즉 무속 신도 부지기수다. 자연의 섭리를 상징하는 산신(山神), 해신(海神), 지신(地神)에다 마을의 수호신인 목신(木神)이며 집지킴이 성주신, 부엌 지킴이 조왕신 등 종교적 정통신앙보다 원시 신앙에서 파생한 맹목적인 신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야말로 온갖 잡신이 우리 일상을 지배해 왔다. 애절한 노랫가락으로 집안에 복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성주풀이'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우리 주변에 샤머니즘이 이처럼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은 저마다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 일이 뒤틀리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으레 기복 문화에 의지하는 국민 정서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요즘엔 만나는 사람들마다 주름진 얼굴에 짜증스러운 표정들이 역력하다. 얼굴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다. 직업적인 역술가가 아니더라도 얼굴만 보면 행불행을 손쉽게 점칠 수 있다.

그럴 때면 으레 기복 문화의 허상(虛像)을 좇아 한천수(寒泉水)라도 한 사발 떠다 놓고 조왕신께 복을 빌어야 부엌살림에 안심이 놓인다고 한다. 어르신들의 몸에 밴 액땜 풍습이다. 매일 일간지에 게재되는 '오늘의 운세'부터 살피며 일진(日辰)을 보는 것도 한국인 특유의 DNA에 뿌리박힌 샤머니즘이다.

민중에 파고든 기복 문화가 오죽 깊었으면 국민을 계도하는 언론사마다 경쟁적으로 지면을 할애할까. 하지만 신문에 난 '오늘의 운세'는 겨우 한두 줄의 행간을 점쳐보는 단편적인 일진에 불과하다. 행간의 내용이 마음에 걸릴 땐 으레 역술인과 상담하는 경우도 있다. 행(幸)을 기대하고 불행을 피하려는 생리본능인지도 모른다. 일종의 사회적 병리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해외에선 한국의 샤머니즘 인문학을 경이의 눈으로 바라본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18년 한국 점성술 시장 규모가 연간 37억달러(약 4조원)에 이르고 여기에 종사하는 역술인만도 줄잡아 30만명이라고 보도했다. 최근엔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성역(聖域·Sanctuary)'이라는 한국 점성술 앱(응용프로그램)의 인기가 대단하다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

미국 시민들은 대홍수를 예견하고 방주를 만든 구약성서의 '노아'를 샤머니즘의 원조로 여긴다고 한다. 서부개척 시절 인디언의 점성술에 심취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일상에서 스트레스가 쌓이면 으레 샤머니즘 인문학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과학적 근거는 희박하지만 한국의 기복 문화처럼 일시적으로 액땜을 하고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해 점성술 앱을 찾는 사람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한 달에 19.99달러(약 2만3천원)만 내면 스마트폰 앱을 통해 매일 운세를 제공하고 역술인과 개별상담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한국의 토정비결과 주역을 인용한 운세 풀이가 앱으로 개발돼 미국 벤처업계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떠오르고 있다고 했다. K팝, K푸드에 이어 K샤머니즘이다. 미국의 점성술 앱이 한국 점성술 시장의 절반이 넘는 21억달러(약 2조4천억원) 정도의 잠재력이 있다고 추정했다.

기복 문화의 종주국인 한국에서도 각 이동통신사와 금융기관들이 경쟁적으로 온라인 앱을 개설해 일일 운세를 무료서비스하고 있다. 최근엔 힐링랩 운세 상담 플랫폼까지 생겨나 성황이라고 한다. 게다가 피의자를 조사하는 검사가 인터넷 역술 프로그램 '만세력'에 들어가 피의자의 사주를 보고 분석해 피의사실을 신문하다가 논란이 된 일도 있다. 그야말로 극성스러운 샤머니즘 인문학의 천국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선지 사람들은 대개 역술인을 찾아가 상담하고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점치기 일쑤라고 했다. 제법 용하다고 소문난 역술인들은 사주팔자를 알면 마음이 편해지고 삶이 보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기 사주팔자도 모르면서 마치 남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듯 얼굴의 허물이나 이름 석자를 트집 잡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외모지상주의에 현혹된 사람들은 스스로 프라이버시 속에 숨겨진 결점까지 까발리고 얼굴도 고치고 이름도 바꿔야 팔자를 고칠 수 있다는 점괘에 넘어가 성형수술을 하고 법원에 개명 신고까지 한다고 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복잡한 재판과정을 거치지 않는 한 개명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05년 이혼과 재혼 비율이 크게 늘고 성과 이름이 다른 가족 형성이 사회적 이슈가 되자 "개인의 권리보장 차원에서 개명을 허가해야 한다"는 취지로 판결을 바꿨다. 이후 개명 신청은 크게 늘었고, 시중의 역술가와 직명가들까지 덩달아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피는 못 속인다"고 했다. 대물린 고유의 성씨(姓氏)는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하여 부모의 이혼과 재혼 등으로 생긴 새로운 가족관계의 정립을 이유로 성까지 바꾸고 싶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나 상당한 이유가 성립되지 않는 한 법률적으로 허용하기 어렵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다.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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