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착한 시스템

  • 입력 2020-02-07 07:45  |  수정 2020-02-07 07:52  |  발행일 2020-02-07 제16면

2020020601000241500009571
최성규<시각예술가>

얼마 전 나는 올바른 정치를 고민하는 지인과 대화하다가 예술정책의 시스템에 대한 작은 의견 차이를 봤다.

나의 지인은 정치가 올바른 예술 정책의 시스템을 통해서 예술인들의 복지는 물론 예술의 부흥을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시스템만으로는 '예술'을 키울 수 없다고 했다. 누구의 말이 맞지도, 틀리지도 않는다. 예술에 대한 '올바르고, 정의롭고, 정직한, 착한 시스템'은 누구나 바라는 것이지만 그런 시스템은 현실에서 기대하기 힘들다.

예술인들의 더욱 좋은 창작 환경을 위해서 국가는 이제 어느 정도의 장치를 마련해뒀다.

각 지역에서는 문화재단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제도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예전보다 잘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시스템을 그저 시스템으로 받아들인다면 예술의 확장과 발전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예술가들은 가끔 문화 정책자를 색안경을 끼고 본다. 예술가들도 시스템을 이용하고만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관에서 내는 정책과 공모의 내용을 살펴보면 비록 미흡한 점도 있지만, 취지와 내용은 깊이가 있고 의미 있는 것들이 많다. 예술인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서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예술 분야 공모에 기획서를 작성할 때 최선을 다해서 작성하든, 대충하든 되는 것은 똑같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애쓰는 것보다 대충하는 것이 현명해 보이기까지 한다.

다른 이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머리를 쥐어 짜내고 어렵사리 일을 하는 게 어리석어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면 아무리 좋은 시스템도 '그냥 시스템'일 뿐이다. 예술가도 관과 시스템을 비판할 것만 아니라 정책을 잘 이해하고, 깊게 생각하고, 창의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글로컬 사회에서 중요한 덕목은 지역의 문제를 풀기 위한 다양한 구성체 간의 합의와 소통 능력이다.

지역의 예술정책 시스템이 아무리 좋게 짜여 있더라도 예술 주체들이 이를 소중히 생각하고, 꼼꼼하게 대하지 않는다면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게 된다.

작은 것부터, '지금, 이곳'의 문제를 대하는 것부터 시작한다면 조금씩 좋아질 수 있다. 세상에 만능의 능력을 갖춘 '올바르고, 정의롭고, 정직하고 착한 시스템'은 없다.최성규<시각예술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