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이육사와 옥룡암

  • 이은경
  • |
  • 입력 2020-04-02   |  발행일 2020-04-02 제26면   |  수정 2020-04-02
쇠약한 몸 이끌고 떠난 그곳
병색 짙어질때면 다시 찾아
'천지에 진실로 내 하나만…'
고독·병마와 싸우며 창작열
옥룡암은 저항문학의 산실

2020040101000036800000721
김주현 경북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

"뵈올까 바란 마음 그 마음 지난 바램/ 하루가 열흘같이 기약도 아득해라/ 바라다 지친 이 넋을 잠재올가 하노라/ 잠조차 없는 밤에 촉 태워 앉았으니/ 이별에 병든 몸이 나을 길 없오매라/ 저 달 상기보고 가오니 때로 볼까 하노라."

이육사는 1936년 8월4일 경주 옥룡암에서 신석초에게 엽서를 썼다. 육사는 '질투의 반군성'에서 "나는 매우 쇠약해진 몸을 나의 시골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동해 송도원으로 요양의 길을 떠났다"고 했다. 당시의 사정은 이병각의 '육사형님'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육사가 "해수욕장에서 보약을 먹고 있으며, 약을 다 먹고 9월 초에나 상경할 것"이라 했다. 육사는 7월20일경 서울을 떠나 대구·경주를 거쳐 29일경 포항에 도착하여 머물다가 8월에 옥룡암으로 간 것이다.

당시 육사에게 옥룡암을 소개한 이는 고암 박곤복으로 보인다. 고암은 육사보다 8살이나 많았지만 육사를 각별하게 대했다. 옥룡암은 남산 탑곡 옛 신인사 터 아래에 자리하고 있어, 외지고 한적하며 은거하기에 알맞은 장소다. 고암은 옥룡암의 창건 당시부터 주지 스님과 잘 아는 사이였다. 고암의 '옥룡암기'에 따르면 1933년부터 극락전·요사채 등이 3년 만에 완성되었다고 하니 육사가 머물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을 것이다. 육사는 옥룡암에 도착하자마자 신석초에게 보고 싶은 마음에 하루가 열흘 같다고 간절한 바람을 시조에 담아서 보냈다.

또한 육사는 1941년에도 옥룡암에 간다. 그는 '계절의 표정'(1942.1)에서 "병이라고 생각한 때는 병이 벌써 뿌리를 단단히 박은 때요, 사실 병이 시작된 때는 첫여름이었던 모양"이라고 했다. 곧 1941년 첫여름 폐질환이 시작되어 모든 것이 귀찮고 거북했지만, 미련한 덕분에 멋모르고 살아왔는데, 가을에 접어들며 병이 깊어져 책상에 엎드린 채로 열이 40℃를 오르락내리락했던 것이다. 결국 전지요양을 하라는 벗들의 권유에 못 이겨 다시 옥룡암에 간다. 그는 경주 구경을 하며 기대에 한껏 부풀었지만, 그러나 "시골 계신 의사 선생이 약이 없다고 서울을 짐짓 가란" 말에 어쩔 수 없이 서울로 돌아온다. 그리고 1년이 못 된 1942년 여름 그는 다시 옥룡암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는 이때에도 신석초에게 편지를 쓴다.

"석초 형! 내가 모든 의례와 형식을 떠나 먼저 붓을 들어 투병의 일단을 호소함은 얼마나 나의 생활이 고독한가를 형이 짐작하여 줄줄 생각한다. 석초 형! 나는 지금 이 너르다는 천지에 진실로 내 하나만이 남아있는 외로운 넋인 듯하다는 것도 형은 짐작하리라."

이육사는 편지에서 투병의 일단을 석초에게 고백한다. 육사는 요양을 위해 떠나왔지만 지인들을 그리워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는 신석초에게 "천지에 진실로 내 하나만이 남아있는 외로운 넋인 듯하다"고 심경을 전했다. 그러한 가운데도 "몇 번이나 시를 써보려고 애를 썼으나 아직 머리가 정리되지 않아 쓰지 못하였다. 시편이 있거든 보내주기 바란다"고 했는데, 이를 통해 그가 끊임없이 창작에 정진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옥룡암에 3개월 정도 머물 예정이었으나 백형 이원기의 타계로 서둘러 귀향한다. 그리고 이듬해 봄 북경에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다가 5월 하순경 모친 소상을 맞아 귀국하고 가을에 피체되었다가 광복을 보지 못한 채 1944년 1월16일 일제의 북경 감옥에서 순국한다. 옥룡암은 그의 문학의 산실이다. 아울러 그가 남긴 보석과 같은 글은 바로 병마와 싸우고 일제에 항거하면서 나왔음을 잊어선 안 된다.
김주현 경북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