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소금〈하〉 藥이냐 毒이냐 '저염식' 딜레마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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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4-03   |  발행일 2020-04-03 제35면   |  수정 2020-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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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학과 전문의들 대다수는 세계보건기구(WHO)권장량 하루 나트륨 섭취 2천㎎(소금 기준 5천㎎)을 강력하게 권고하지만, 일부 전문가는 그런 식으로 가면 저염식단으로 인한 상당한 후유증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적당히 짜게 먹는 게 좋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는 '무조건 싱겁게 먹자'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소금 하루 섭취 권고안에 대한 세계 의료진의 주장조차 시비를 일으키고 있으니 차제에 실증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짜게? 혹은 싱겁게?
WHO, 하루 소금 섭취량 5g 권고
과잉 섭취, 혈압·콩팥 기능 등 우려
알코올 중독보다 위험한 소금 중독

언젠가부터 이 나라에서는 소금을 '악마'로 낙인을 찍고 있다. 물론 그 반대 진영에서는 소금을 '천사'로 섬기고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소금에 대한 어떤 섭취 기준 같은 게 없었다. 각자 알아서 섭취했다. 하지만 10년 전쯤부터 우리는 소금 때문에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로 법정 수치의 범주 속에 소금을 감금하기 시작한다. '소금 섭취량'에 대해 가장 권위 있는 대답을 할 수 있는 기관은 세계보건기구(WHO). 한국은 식품의약품안전처로, 그 기구의 권고를 존중한다. 세계보건기구는 하루 5곔(나트륨 기준 2곔·2천㎎)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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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장진기씨 부부가 저염 문화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소금의 식품의학적 담론을 비교 분석한 책 '백년 면역력을 키우는 짠맛의 힘'. 표지

특히 국내 가정의학과 전문의 대다수는 짜게 먹는데 길들여져온 우리 국민을 향해 '과도한 소금 유해론'의 논리를 이렇게 설파한다. "나트륨을 너무 많이 먹으면 혈압이 올라간다. 나트륨은 이 호르몬 기능을 촉진해 혈관 벽을 수축해 혈압을 높인다. 나트륨을 과잉 섭취하면 다 배출하지 못한 나트륨이 콩팥에 쌓이면서 콩팥 여과 기능에 문제를 일으킨다."

싱겁게 먹기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김성권 서울대 명예교수는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소금 섭취 실태를 보면 습관성, 반복성, 금단현상 등 일반적으로 중독이 보여주는 징후와 증상을 모두 갖고 있어 학계에서는 중독에 버금하는 상태로 보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소금 중독이 알코올 중독보다 더 위험함에도 위험성이 덜 부각되고 있는 것은 대부분의 소금을 식품에 섞어 조리된 상태로 섭취하기 때문"이라고 경고한다.

소금 집단 노이로제
초·중·고 급식 공문에도 싱겁게 조리
과염 섭취 두려움이 건강 더 해칠수도


2010년을 지나면서 전국적으로 '소금 소탕령'이 내려진다. 나트륨 유해성 교육, 싱겁게 먹기 운동은 초·중·고등학교의 급식 메뉴 알림 공문에 빠지지 않는다. 각종 뉴스와 건강 프로그램, 드라마 속 대사까지. 소금은 건강의 적, 질병의 원흉이 되어버렸다. 나아가 소금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며 자라난 세대가 어느덧 아이를 낳아 기르는 부모가 된 지금, 임신해서도 맹목적 저염식에 길들여진다. 이유식에도 간을 하지 않은 채 무조건 싱겁게 먹이느라 무던히 애쓰고 있다.

'플라세보(Placebo)' 효과도 있지만 '노세보(Nocebo)'효과도 있다. 노세보는 위약 효과로 알려진 플라세보 효과와 반대되는 부정적 효과를 뜻한다. 질병보다 무서운 것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 '두려움'이다. 해로울 것이라고 믿으면 병에 걸릴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마찬가지로 소금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정보를 계속 듣다 보면 음식이 조금만 짜도 과하고 몸에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과학적 근거 부족한 하루 섭취량
획일적 기준보다, 체질별 조절 지적
美 고혈압 권위자, 병증과 관계 없어
염분 감량이 건강 위험 초래할 우려

충격적이게도 현재 국내외 과학자들의 하루 소금 섭취량에 대한 생각은 양분돼 있다. 그래서 소금 시비 논쟁은 더 거세지고 있다. 이 정보를 보면 이게 맞는 말인 것 같고, 저 보고서를 보면 저게 맞는 것 같다. 식약처도 그냥 WHO 권고안을 좇고 있지만, 그 권고안 자체에 대해 의문을 갖는 의사도 있다는 게 큰 문제다.

2005년 나트륨 저감화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많은 단체에 영향을 주었던 미국 의학학술원(IOM)조차도 2014년 5월 하루 섭취량 2천300mg 이하가 건강에 좋다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양·한방 통합에 앞서고 있는 상당수 대체 의학자들은 획일적 소금 섭취량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형편과 처지에 근거한 체질에 따른 소금 섭취론을 개진한다. 땀을 더 많이 흘리는 사람과 덜 흘리는 사람, 육식주의자와 채식주의자, 고위도와 저위도에 사는 사람들의 소금 섭취량은 결코 같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소금 섭취량에 따른 생리 변화 시험조차도 의도한 부분을 증명하기 위해 시험 수치는 얼마든지 재가공될 수 있다. 무엇을 부각시킬 것인가에 따라 실험 자체를 고안하고 표본을 선정하면 데이터를 얻는 과정에서 수치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더욱 큰 문제는 하루 섭취량을 인위적으로 제한한다는 것이 과연 과학적으로 타당한가 하는 점이다.

미국 고혈압학회 회장이었던 데이비드 맥캐런 박사는 "소금 섭취는 뇌가 결정할 문제이지 정책적으로 관여할 일이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소금=고혈압'이란 등식을 유포시킨 의학자는 누굴까? 소금과 고혈압에 관련한 연구로 '루이스 달(Lewis Dahl)의 실험'이 있다. 그는 소금이 인간에게 고혈압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첫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50년대 실험 쥐에게 소금을 먹였을 때 고혈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연구했다. 소금이 고혈압을 유발한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지만 실험 과정에서 미국인이 먹는 소금 양의 50배와 맞먹는 양을 쥐에게 먹였다고 알려지면서 실험 자체의 문제점이 공개되었다.

미국 심장학회와 고혈압학회의 최고상이라 불리는 지바상을 수상한 아오키 규조 박사는 "비타민 C의 결핍은 특정 질환을 일으킬 뿐이지만, 염분의 결핍은 생명을 위협한다. 일본인의 고혈압증은 98% 이상이 소금과 관계가 없다. 신장이나 호르몬, 혈관, 혈액의 문제다. 대다수 일본인에게 염분을 감량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오히려 염분 감량은 건강에 큰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소금 옹호론
자연섭생법 전문가 김은숙·장진기부부
섭취 늘리면서 건강 되찾은 사례 연구
다양한 체크 시스템 가이드라인 필요


최근 가장 센세이션을 일으킨 부부 소금 옹호론자가 있다. 20년 동안 건강자립 멘토 및 자연 섭생법 전문가로 활동해온 김은숙·장진기씨 부부다. 이 부부는 최근 '백년 면역력을 키우는 짠맛의 힘'(앵글북스)이란 책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 저염식의 치명적 함정과 소금의 진실을 파헤쳐 주목을 끌고 있다. 이 책은 소금과 관련된 수많은 사례 가운데서 특히 적극적으로 '저염식'을 하면서 건강을 잃었다가 소금 섭취를 늘리면서 건강을 되찾은 사례만을 모았다.

'2017 소금박람회(Solar Salt Fair 2017)' 갯벌 천일염 학술심포지엄이 '대한민국 건강소금! 갯벌천일염'을 주제로 서울 코엑스 콘퍼런스룸에서 열렸다.

이 심포지엄에서는 나트륨 섭취량을 줄이기 위한 저염 식습관 문화가 당연시 받아들여지는 현실에서 '오히려 소금 섭취량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 때 김학렬 국립목포대 연구전임교수가 소금 섭취량과 관련 이런 의견을 개진했다. "WHO 권고와 달리 근래 연구에서는 구석기시대에 우리 조상은 이미 육류가 주식이었기 때문에 나트륨 섭취에 문제가 없다는 상반된 연구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낮은 섭취량(2천500mg 이하)이 높은 섭취량(4천950mg 이상)에 비해 건강(CVD-심혈관계질환)에 이익이 된다는 연구근거는 미약 함으로 나트륨 섭취량을 줄여야 한다는 과학적 근거도 없다"고 강조했다.

소금 관련 슈퍼컴퓨터가 우리 몸에 장착된 센서를 체크해 매일 필요한 소금 섭취량을 알려주지 않는 다음에야 현재로선 자기한테 필요한 소금 섭취량을 스스로 알 수는 없다. 소금은 대체 식품이 없다. 먹지 않으면 생명을 잃게 된다. 과염보다 더 위험한 건 저염식이란 지적도 염두에 둬야 한다. 현재 상당수 국민은 무조건 싱겁게 먹어야 된다는 무슨 '신념' 같은 걸 갖고 있다. 이게 어떤 후유증을 가져올지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정부는 다양한 체크 시스템을 가동해 들쭉날쭉한 소금 섭취량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

글·사진=이춘호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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