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단풍' 이 공식은 껍데기일 뿐 진짜 가을은 그저 눈으로 볼 수 없다

  • 이춘호
  • |
  • 입력   |  수정 2020-10-16  |  발행일 2020-10-16 제면
2020 가을 포토포엠(photo poem)

셀로판지처럼 바스락 소리내는 이파리들

새싹부터 末葉…드라마틱한 이파리의 삶

하늘의 푸르름은 깊이도 넓이도 가늠 못해

28만여평 넓이의 대구 달서구 대명유수지

해질녘 전망데크에 사진애호가 자리잡아

3
이 가을 최대 포토존으로 사랑받고 있는 달서구 대명유수지에 가면 만개 중인 수천만 그루 억새의 장관을 볼 수 있다. 멀리 앞산과 비슬산 연봉이 아파트촌 너머로 아스라이 보인다.

가을엔 가을이 보일까? 눈만으론 가을을 제대로 볼 수 없겠지. 단풍=가을. 그건 형식에 불과해. 맘이 출렁하지 않으면 가을의 껍데기만 본 거겠지.

살다보면 돈의 문제겠거니 하다가 결국 그게 '맘의 문제'라고 독백하는 그런 날. 그 맘이 영혼의 범주로 스며들면 어느새 계절은 가을이다.

기온이 5℃ 이후로 내려간다. 이파리가 셀로판지처럼 파삭거린다. 뿌리는 비상계엄령을 내린다. 가지끝까지 올라간 수액들을 사령부로 불러 들인다. 자칫 영하에 방치되면 가지가 동사되는 걸 막기 위해서다. 광합성 작용을 위해 전위대로 보낸 수많은 이파리를 미련없이 내쳐야 나무도 산다. 이승에 잔류하는 가지, 하지만 저승으로 떠나야 될 단풍. 그 사이에 '떨켜'라는 특수세포막이 '철옹성'처럼 드리운다. 그때부터 단풍은 나무의 품속으로 절대 U턴할 수 없다. 자연은 그렇듯 매년 이런 방식의 사별을 지속한다. 죽음의 그 생산성 탓인지 자연은 날로 광휘롭기만 하다. 인간의 죽음, 그 역시 한쪽은 그늘이지만 누군가에겐 '빛'이 되는 생기 아닌가. 죽음, 걱정할 필요없다.

이파리의 일생도 무척 드라마틱하다. 봄날의 새싹, 여름엔 이파리, 그리고 가을날 단풍, 이 3단계 이파리는 이후 3단계 낙엽의 삶을 거쳐 종멸된다. 길바닥에 떨어진 낙엽, 그건 '초엽(初葉)'이다. 그게 마구 굴러다닐 때는 '중엽(中葉)', 그리고 환경미화원의 포대기 안에 들어가면 '말엽(末葉)'. 계절은 그렇듯 모두 6종류의 잎의 연대기를 보여준다. 절정의 순간은 바로 단풍과 낙엽 사이. 가을이란 스크린은 그걸 가장 명확하게 상영해준다.

가을하늘의 푸르름. 깊이도 넓이도 가늠 못한다. 너무 무변광대해 대략 난감할 따름. 그 피륙은 너무나 시퍼렇다. 숫돌에 얹어 더 갈아내면 허공의 날이 모두 바스라질 것 같다. 그 위를 미끄러져 흐르는 추풍 모드는 소슬·삽상, 그래서 하늘은 더욱 청명. 그 형형한 가을밤이 피워 문 달빛의 자태를 예전 선비들은 '교교(皎皎)'라 지칭했다.

기세등등 여름날 살만 디룩디룩 불렸던 저 구름들. 이 계절에 도착하면 아니다 싶어 다들 다이어트를 시작한다. 해빙기 유빙(流氷)처럼 구름은 얇게 한없이 분열한다. 한숨 같다가, 깃털 같다가, 양떼 같다가…. 햇살은 또 어떤가. 수정구슬만큼 투명하고 부유물 하나없이 티없이 맑다. 가을은 그래서 우주의 출발역과 종착역을 동시에 보여준다.

하늘은 천하무적. 너무 오래 보지말자. 우리에겐 풀과 나무의 경치가 제일 만만하다. 그래서 가을을 새롭게 정의해 본다. 너는 시야(視野)가 아니라 '시선(視線)'의 몫. 시야는 습기가 개입된 '경치'. 하지만 시선은 제습이 제대로 된 '풍광'의 프레임이랄 수 있다. 시야 속에서는 감성보다 감정이 도드라진다. 하지만 시선의 범주에서는 감정으로 통하는 문이 열린다. 무뎌진 영성이 제기능을 한다.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했던 일들도 슬그머니 용서된다.

앞날보다 지난날을 더 돌아본다. 가을바람은 그 순간에 개입한다. 촛농처럼 내려온 살쩍(귀밑머리털)을 뒤흔든다. 우수의 촉수가 바람과 교신한다. 가장 멀어진 것이 능히 가장 가까운 게 된다. 당나라의 시성 두보의 시에는 그런 우수가 행간 곳곳마다 파고든다. 구양수가 지은 '추성부(秋聲賻)'도 그때가 제철이다.

지난 목요일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달서구 내 한 광활한 억새군락지에 갔다. 맹꽁이서식지로도 잘 알려진 달서구 대명유수지, 전체 넓이가 무려 92만5천여㎡(28만여평). '대구 안에도 이런 데가 있었나' 싶었다. 전망데크엔 사진애호가가 여럿 퍼질러 앉아 있다. 일몰의 가을을 역광 버전으로 담고 싶은 것이다. 대낮에는 너무나 푸짐한 광량 때문에 사진이 잘 되지 않는다. 작렬하던 유채색이 흑백톤으로 응축되는 타이밍을 노리는 것이다. 전망프레임 벤치에 앉은 한 여성은 갓 피어난 억새 한 자락을 들고 자기 가슴인 양 노을을 바라보고 있다. 알록달록한 풍경에 길들여진 현대인. 그들에겐 지금 저 흑백사진이 또 다른 보약일지도 모르겠다.

글·사진=이춘호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
국가보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