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짐승의 몸으로 신성을 꿈꾸는 자 누구인가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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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26   |  발행일 2020-11-26 제22면   |  수정 2020-11-26
모순적 통일성을 갖는 인간
단군신화에서 그 심층 발견
짐승 몸·신의 성품 지닌 단군
욕망 저편의 신성에 대한 꿈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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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락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국인에게 단군신화는 무엇인가. 13세기 초 몽골 부족이 칭기즈칸에 의해 통합된다. 칭기즈칸과 그의 후예들은 세계사에서 가장 광활한 영토를 가진 대제국을 건설하게 되는데, 고려 역시 이 시기에 그들로부터 무지막지한 침략을 당하게 된다. 30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전 국토가 유린당하고 수많은 사람이 전례 없는 피해를 입었다. 삼국유사는 바로 이러한 몽골의 침략을 받으면서 탄생했다.

국가적 위기는 고려 민중으로 하여금 운명 공동체 의식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이때 고려인들은 고조선과 그 시조인 단군왕검을 재발견하게 된다. 특히 국조 단군에 대한 의식은 이후로도 국가적 위기가 발생했을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했다. 단군을 통해 역사 공동체 의식을 다지며 위기 극복을 위한 내적 에너지를 결집시켰던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단군신화가 재조명되면서 민족의식을 고취시켜 나갔던 것에서 이러한 사실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단군신화는 여러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나는 이 신화에서 인간의 심층을 발견한다. 환웅이 그의 무리 3천명을 이끌고 인간 세계를 다스리며 교화시키자,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인간되기를 희망했고, 그중 쑥과 마늘을 먹으며 동굴 속에서 21일 동안을 인내한 곰은 마침내 여자로 변신한다. 이후 이 웅녀가 신단수 아래서 아이 배기를 축원하자, 신인 환웅이 잠깐 사람으로 변해 그와 혼인해 아들을 낳았다. 그가 바로 단군왕검이다.

단군신화에서 곰은 짐승이었고, 신웅(神雄)으로도 불렸던 환웅은 신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환웅은 원래 인간의 몸을 갖고 있지 않았다. 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웅녀가 임신하기를 원했으므로, 환웅은 잠시 사람의 형체로 변해 혼인을 통해 웅녀가 아이를 낳게 했다. 이처럼 짐승인 곰과 신인 환웅이 결합해 단군을 낳았으니, 단군이 '짐승'의 몸과 '신'의 성품을 공유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짐승과 신의 결합체가 바로 단군이었던 것이다.

성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육체는 기(氣)이고, 정신은 이(理)다. 이를 현상과 본질로 나눈다면, 육체라는 현상 속에 정신이라는 본질이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기라는 개념을 통해 현상에서 본질로 파악해 들어가는 성리학의 이원적 구조로서 짐승과 신의 아들 단군을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리학은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한다는 '알인욕 존천리(알人欲 存天理)'를 강조하므로, 교조주의적 해석이 앞설 수밖에 없다. 다소 부담이 가는 부분이다.

인간은 원래부터 모순적 통일성을 갖는 존재다. 짐승의 육신과 신의 정신을 함께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육신이 없으면 우리의 정신이 깃들 곳이 없고, 정신이 없으면 인간은 하나의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 즉 인간은 식욕과 색욕 등의 욕망을 강렬하게 지니면서도 신을 갈망하며 영원을 꿈꾸는 존재다. 이처럼 욕망 저편에 있는 신성에 대한 꿈은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하는 위대한 무엇이 아닐 수 없다.

절멸의 계절이다. 여기저기 나뒹구는 낙엽을 밟으면서 내 안에서 들려오는 두 가지의 소리를 함께 듣는다. 짐승의 울음소리와 신의 노랫소리! 감각이 있어 아름다움이 무엇인 줄을 알고, 지각이 있어 그것이 슬픔인 줄을 깨닫는다. 그러나 짐승의 울음소리가 사라지면 신의 노랫소리 또한 멈출 것이다. 이 둘이 함께 벌이는 경쟁과 협동은 인간 이해를 더욱 높은 단계로 끌어올린다. 이로 보아 나는 짐승과 신의 아들인 단군의 적손(嫡孫)임이 분명하다. 단군은 짐승의 몸으로 신성을 꿈꾼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정우락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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