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Music Story] 싱어송페인터/ 윤동희...밤에는 노래하고, 낮에는 그림 그려…나는 꿈을 꾸는 반항아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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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2-19   |  발행일 2021-02-19 제35면   |  수정 2021-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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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것이 궁금한 아이였다. 과학자가 꿈이었으나 중학교 때부터는 화가가 되고 싶었고 고교 때는 영화 '러브레터'를 보고 뜬금없이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했다. 중학교 때까지 우리 세대가 소비해왔던 방식과 같은 서태지와 아이들, HOT, 룰라, 클론 등 힙합·펑키스러운 음악을 들었다. 그러다 비틀스를 만났다. 비틀스는 하나의 우주였다. 윤동희는 대학시절 캠퍼스밴드에서 록스피릿을 배우고 현재는 '유대해'라는 3인조 밴드를 이끌며 작가활동도 겸하고 있다.
네모난 것들을 모두모아
동그란 것들을 만들지
동그란 것들을 모두모아 영과 일을 만들지
영과 일을 모두모아 세상의 일을 만들고
세상의 일을 모두모아 너의 욕심을 만들지
넌 나의 운명 넌 나의 태양
우주 속을 떠도는 먼지처럼
난 너와 너와 날고 싶어

'그의 아파트에서 우주로 날아간 남자'

'그의 아파트에서 우주로 날아간 남자'그는 자신을 노래 부르고 그림 그리는 '싱어송페인터(Sing a song painter)'라고 소개한다. 훤칠한 체구, 훤한 표정….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세상에 대한 묘한 주저감 같은 게 묻어 있다. 그는 스스로 '억척스럽고 열심히는 하지만 BUT…'이라며 말끝을 흐린다. 변방의 로컬시티에서 예술하면서 먹고산다는 것의 서러움 같은 게 감지된다.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불혹의 나이가 되기까지 아직 이렇다 할 만한 결실을 못맺고 있는 자신에 대한 '자탄'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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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올해의 청년작가전에 참가했을 때 그는 대구 각처 재개발 구역에서 갖고 온 수십 개의 돌에 금색 락카로 '바르게 살자'란 문구를 찍었다. 바르게 살수록 절망하는 소시민들의 삶을 풍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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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유대해'는 20대 초반에 우연히 만난 음악가 3인의 꿈의 결집체다. 포크음악을 기반으로 한 3인조 네오포크 밴드다. 유대해는 누구나 거쳐가는 삶의 세 단계인 젊음과 죽음, 삶의 이상, 꿈을 함축해 들려주려 한다.

불혹에도 꿈꾸는 소년
과학자·화가·영화감독·뮤지션…
꿈 많았던 소년, 음악·미술에 집중
밴드 기타·보컬이자 싱어송라이터
매월 온라인 라이브공연 열어 소통

음악세계
'세상의 일 모아 너의 욕심을 만들지'
'그렇게 울지 말고 조용히 낮잠 자자'
자본으로 획일화 된 세상 향한 풍자

미술세계
시대의 그늘·재개발 붐의 이면…
설치미술·복합미디어아트 등 구사
대구미술관 등서 개인전 6회 열어


◆ 유대해 밴드

그가 이끄는 밴드 이름이 참 재밌으면서도 숙연하다. '유대해'. 무슨 뜻일까? 유는 'YOUTH', 대는 'DEATH', 해는 'HEAVEN'을 의미한다. 펑키한 사운드를 '유스', 메탈과 록은 '데스', 포크와 사이키델릭한 이미지는 '헤븐'으로 시각화한다. 젊음·죽음·천국, 용암처럼 펄펄 끓는 열정을 죽도록 갈고닦아 자신의 음악을 듣는 팬들의 맘을 천국으로 만들어보겠다는 남다른 각오가 묻어 있다.

매월 한번 라이브 공연을 명덕네거리 악기상가 도로변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드럼 파트는 김영수, 베이스는 조세현이 맡고 있다. 각자의 캐릭터 또한 유스는 드럼 김영수, 데스는 베이스 조세현, 헤븐은 보컬기타의 윤동희가 커버한다. 연주에서도 그런 특징이 잘 드러나게끔 조율한다.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한 그는 지금까지 10곡 이상을 작사·작곡해 놓고 있다. 가장 애착을 갖는 곡은 '그의 아파트에서 우주로 날아간 남자'.

'네모난 것들을 모두모아/ 동그란 것들을 만들지/ 동그란 것들을 모두모아 영과 일을 만들지/ 영과 일을 모두모아 세상의 일을 만들고/ 세상의 일을 모두모아 너의 욕심을 만들지/ 넌 나의 운명 넌 나의 태양/ 우주 속을 떠도는 먼지처럼 난 너와 너와 날고 싶어'

음색에선 콜드플레이, 에드시런, 데미안라이스 등이 감지된다. 몽롱하면서도 구도적인 색채가 빛난다. 이 노래의 제목은 러시아 개념미술가인 일리야 카바코프의 1988년의 설치작품 명이기도 하다. 구소련시대 작가들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 받았기에 자신의 아파트에서 전시를 여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의 작품은 그때의 강압적인 체제에 대한 반항이자 그때 사회로부터 탈출을 원하는 그와 그의 동료 그리고 구소련인들의 바람을 표현한 거다. 그리고 이것은 구소련 같은 전체주의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으로 획일화된 사회를 향해 던지는 그의 시니컬한 풍자다.

두 번째 곡 '낮잠'도 재밌다.

'자자 낮잠을 자자 그렇게 울지말고/ 아주 조용히 낮잠을 자자 그렇게 잊어/ 너는 조금씩 멀어지고 나도 조금씩 사라지고…'

현대인들에게 쉼을 주고 싶은, 아니 쉴 것을 권유하는 노래다. 인간의 신체가 진화해 왔다면 기술의 발전과 사회가 변화하는 속도는 이미 그것을 넘어섰다. 삶의 의미조차 생각해보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말고 낮잠 자며 잠시 쉬는 것을 말하는 노래다.

언뜻 뮤직카페 같은 그의 작업실 문을 열었다. 왼쪽은 드럼세트까지 갖춰놓은 스테이지 스페이스, 그리고 오른쪽은 이런저런 커피·차·탄산음료·맥주 등을 겸할 수 있는 바텐이 있고 천고가 높은 등받이 없는 의자가 네 개 놓여 있다.

유전자 속엔 할리우드키드가 살고 있다. 학창시절부터 많은 것들이 궁금한 아이였다. 과학자가 꿈이었으나 중학교 때부터는 돌연 화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는 영화 '러브레터'를 보고 돌연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결국 미대에 진학했지만 그의 몸 반쪽은 이미 뮤지션의 피로 전염돼 있다. 밤에는 뮤즈한테 안겨 있다가 낮이면 다음 개인전 작품 리스트 헌팅에 몰입을 한다. 밤과 낮에 사용하는 창작의 근육이 다르다. 어떨 때는 자신이 온갖 비현실적 실험을 강행하며 점차 불행의 덫으로 빠져들어가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악령에 갇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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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대구 향촌문화관 기획 타임프레임전 주제인 중첩된 간극을 실감나게 표현해보려고 방치된 변두리 한 저탄장에 웅덩이를 파고 들어가 퍼포먼스를 벌였던 윤동희.
◆나의 음악이야기

중학교 때까지 우리 세대가 소비해왔던 방식과 같은 서태지와 아이들, HOT, 룰라, 클론 등 힙합·펑키스러운 음악을 들었다. 그러다 비틀스를 만났다. 비틀스는 하나의 우주였다. 한 밴드가 그렇게 다양한 음악을 파고들었다는 게 경이로웠다. 고교 미술부 동아리 친구들을 통해 록스피릿을 일깨우게 된다. 인디뮤직의 아지트였던 공연장 '헤비' '레드제플린' 등은 하나의 부적과도 같았다. 대구의 명실상부한 록의 끝판왕으로 불리기도 하는 밴드 '아프리카'의 사운드에도 쩔었다.

영남대 시절 그룹사운드를 만난다. 그는 숫기가 없었다. 밴드 동아리를 찾아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밴드 '코스모스'에서 드럼을 배우고 있는 같은 과 동기의 권유로 음악과 동침을 하게 된다. 원래는 보컬을 하고 싶었지만 록그룹사운드에 맞는 목소리가 아니라 베이스를 잡게 된다. 그때부터 입대 전까지 그룹사운드 활동과 연주가 필요한 곳에서 세션 활동을 했다. 2년 넘게 베이스만 쳤다.음악에 영향을 준 대표적 뮤지션은 산울림, 라디오헤드, 앨리엇 스미스, 너바나 등이다.

군대시절엔 작곡을 하고 싶었다. 뒤늦게 통기타를 배워가며 작곡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군대를 전역하고도 간간이 밴드 활동을 하기도 했었지만 전공인 미술에 전념하게 된다. 20대후반부터 10여년간 미술계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미술을 시작하게 된 2009년 지역에선 찾아보기 힘든 블루스기타리스트를 만나게 된다. 이대희(E-day)밴드 리더인 이대희였다. 그 밴드에서 베이스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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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유대해'의 공연 모습.
◆유대해 뒷이야기

유대해는 20대 초반에 우연히 만난 음악가 3인의 꿈의 결집체다. 지난해 4월 우연히 다시 재회해 결성했다. 포크음악을 기반으로 한 3인조 네오포크 밴드다. 시적인 가사와 멜로디 그리고 사이키델릭과 록을 접목한 사운드를 추구하며 3인조의 한계에서 벗어난 다채롭고 새로운 음악을 추구한다. 유대해는 누구나 거쳐가는 삶의 세 단계인 젊음과 죽음, 삶의 이상, 꿈을 함축해 들려주려 한다. 그는 멤버와 극적으로 재회하게 된다. 김영수는 17년 만, 조세현은 14년 만에 음악으로 재회하게 된다.

◆ 나의 미술이야기

영남대 디자인미술대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그동안 대안공간 싹, 봉산문화회관, 청주 미술창작스튜디오, 서울 평화미술관, 대구미술관, 향촌문화관 등에서 6번 개인전을 했다. 영천 시안미술관, 달성군 가창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 활동도 했다.

예술과 비예술, 그리고 시대의 그늘, 권력의 미연, 개발과 보존의 가치를 자신만의 풍자 오브제를 동원해 그려낸다. 일반 회화에서 많이 벗어났다. 요즘 대세인 설치미술, 복합미디어아트 등을 구사한다.

2017년 10월 향촌문화관 기획 타임프레임전에 초대받은 그는 '중첩된 간극'이란 주제의 내면을 보여주었다. 재개발 붐의 이면을 고발했다. 북성로의 철거될 운명의 여러 건물의 이미지를 스틸사진으로 찍은뒤 그걸 지폐 크기로 자르고 지폐다발처럼 묶어 지폐계수기에 넣어 휘리릭 돌려준다. 허무하게 사라지는 이미지들…. 재차 원도심을 돌며 찍은 해묵은 건물이미지를 필름으로 만들어 대구문화예술회관 외벽에 화면으로 쏘아주며 보존과 개발의 의미를 되짚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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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정부 출범 때 516장의 망령시리즈를 제작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운동가, 군인, 노동자 등 20세기를 살아온 온갖 직업군상의 영정사진을 토대로 목탄으로 드로잉을 그렸다. 그걸 다 합쳐놓은 브로마이드 화면을 보며 한 명의 인물이 피어난다. 바로 5·16의 화신,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기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있다. 2010년 대구 변두리에 자리한 폐기된 저탄장 덤불 사이 공지를 삽으로 깊숙하게 파고 그 안에 들어가 목만 내놓고 앉았다. 그리고 남북한, 일본, 미국, 중국, 러시아 이 6개국의 국기를 잘라 밧줄로 만들어 15명의 관람객을 묶기도 했다. 010-4174-3665

글·사진=이춘호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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