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청산별곡을 꿈꾸는 시대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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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2-25   |  발행일 2021-02-25 제22면   |  수정 2021-02-25
이상향 못찾고 체념 노래한
고려가요 '청산별곡'과 같이
TV '…자연인이다'類 방송
자연서 행복 찾고자 하지만
현대인 삶의 고통 기댄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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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영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우리의 수많은 고전시가 작품 중에서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작품이 '청산별곡'이다.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 언제쯤에 한 번은 배웠던 노래이기도 하고, 작품에 대해 세세히는 알지 못해도 위의 구절 정도는 어디선가 들어본 적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인터넷에서 '청산별곡'을 검색해 보면 수많은 한정식 식당의 상호가 '청산별곡'이기도 하고, 자연 친화적 삶이나 전원의 목가적 삶을 상징하는 말로 널리 쓰이는 것이 '청산별곡'이기도 하다.

'청산별곡'은 고려 시대에 지어진 노래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작자가 누구인지, 어떠한 배경에서 창작되었는지, 창작 동기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을 확인할 만한 자료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서경별곡(西京別曲)'이나 '만전춘별사(滿殿春別詞)'와 같은 고려가요 작품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당대 저잣거리에서 유행하던 노래가 고려 왕실의 궁중 속악(俗樂)으로 수용되면서 구전으로 전승된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이후 '청산별곡'은 조선 전기 세종대왕에 의해 훈민정음이 창제된 다음, 궁중 음악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악장가사(樂章歌詞) 및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 등의 악서(樂書)에 한글로 기록되어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청산별곡'은 "얄리얄리 얄랴셩 얄라리 얄라"와 같이 입에 착 달라붙는 후렴구와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처럼 반복에 의한 뛰어난 음악성을 가지고 있어 고려가요가 가진 형식적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 더불어 현실의 고통과 비애를 벗어나 청산과 같은 이상향을 꿈꾸는 인간의 보편적 감성을 고도의 상징과 이미지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기에 뛰어난 문학성을 가진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학적 가치만으로 '청산별곡'이 현대인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 TV를 켜면 '나는 자연인이다'와 같은 부류의 프로그램을 너무나 많이 볼 수 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오지의 산골에서 세속을 벗어나 자연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현대인들은 열광한다. 그리고 도시 주변을 조금만 벗어나 보면 여기저기 전원주택이라는 이름의 집들이 수도 없이 지어지고, 은퇴 후 귀촌을 꿈꾸는 이들 또한 많아졌다. 이러한 현상은 도시에서 태어나 콘크리트 아파트에서 살아가고, 높은 고층의 빌딩이나 회색빛의 공장 속에서 일하며 평생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더이상 도시의 삶이 마냥 행복하지는 않기 때문일 것이다.

도시 안에서의 끊임없는 경쟁과 물질적 욕망 속에서 지쳐가는 현대인들에게 자연은 그들에게 하나의 이상향이 되어 가고 있다. '청산별곡'의 화자가 이상향인 청산과 바다를 찾았던 것처럼 현대인들 또한 그들이 꿈꾸는 행복을 자연 속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청산별곡'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작품의 화자는 이상향인 청산과 바다를 결국 찾아가지 못하고 술로 시름을 달래며 체념한다. 결국 현실에서 고통받는 인간이 갈 수 있는 이상향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현대인들이 꿈꾸는 전원의 삶 또한 그 속에는 엄연한 현실이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TV에 등장하는 자연 속 전원의 낭만적인 모습은 현대인들이 가진 삶의 고통에 기대어 만들어낸 달콤한 환상은 아닐까.


조유영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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