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떠도는 땅과 이주자들의 시간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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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04   |  발행일 2021-03-04 제22면   |  수정 2021-03-04
외지 난민을 배척하는 것은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같아
중요한 것은 인간의 존엄뿐
낯선 이를 포용하는 자세로
난민 문제 바라보고 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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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연 대구대 인문과학 연구소 교수

얼마 전 제주에 다녀왔다. 봄마중을 간 것은 아니고,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과의 연구협약 체결을 위해서다. 이 연구원은 제주학 연구를 통해 지역 사회의 발전과 동아시아 사회문화 교류에 기여하고 있다. 근래에는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사건을 기반으로 '쿰다로 푸는 제주 섬의 역사와 난민'이라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삼별초를 비롯하여 4·3항쟁까지 육지에서 건너온 자들의 억압과 제주 사람들의 저항의 역사는 오래된 것이고, 그때마다 많은 이들이 바다를 건너 제주를 떠났다. 바다를 떠도는 난민들, 경계에 서 있는 이주자들은 제주 사람들의 또 다른 모습일지 모른다.

이 연구의 핵심은 제주의 '쿰다' 문화에 있다. '쿰다'는 '품다', 포용하고 품어 안는다는 뜻의 제주어다. 제주 사람들은 육지 사람들의 수탈에 저항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상처 입어 숨어들어온 이들을 품어 안았다. 어머니의 품처럼 제주는 약하고 여린 존재를 포용하고 받아들인다. 이러한 '쿰다'의 행위는 내 집 밖 타자를 집 안으로 맞아들이는 환대에 다름 아니다. 나와는 다른 '낯선 자'이지만, 그들의 호소에 응답하는 것. 진정한 '쿰다'를 실천하는 것이 난민과 이주자 문제를 풀어가는 열쇠가 될 것이다.

이러한 난민과 이주자의 문제는 타민족이나 인종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근현대사를 조금만 살펴봐도 국경을 넘는 이주민의 기록은 넘쳐난다. 조선 후기만 해도 지배층의 수탈을 피해 스스로 난민이 되어 국경을 넘은 자가 허다했으며, 국권침탈을 전후로 해서 만주와 연해주 등지로 이주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연해주에 이주한 조선인들(고려인)이 스탈린 정권에 의해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된 사건은 민족 이주 역사의 대표적 사건이다. 연해주 일대 일본의 간첩활동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1937년 강제 이주된 수십만 명의 고려인들은 자신의 삶터에서 빈손으로 쫓겨나 이름도 모르는 머나먼 땅에 던져졌으며, 열악한 열차 환경으로 수많은 이들이 사망했다.

소설가 김숨은 이러한 강제 이주의 역사를 소설 '떠도는 땅'에서 다루고 있다. 소설은 시베리아 횡단열차 한 칸에 탑승한 이주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성별, 나이, 태생도 다르고 연해주에 정착한 이유도 다른 이들의 이야기는 그들을 거슬러 고려인의 150년 역사로 얽혀있다. 민족과 인종, 계급과 이데올로기로 갈등하는 그들의 과거는 강제 이주되는 열차 안에서 모두 무화된다. 조선인도, 러시아인도 아니고, 노동자나 지주도 아니며, 적군파도 백군파도 아닌 그들에게 요청되는 것은 그저 인간의 존엄뿐이다.

'떠도는 땅'은 강제이주의 역사적 사건에서 시작하지만, 실상은 뿌리 내릴 땅을 찾아 떠도는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을 담고 있다. 땅을 찾아 국경을 넘어온 이들은 그들이 일군 땅을 빼앗기지만, 새롭게 이주한 땅에서도 끈질기게 뿌리내린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 다니다가 생을 마치고, 또 다시 이승에서 저승으로 이주하는 존재, 그것이 인간이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난민이나 이주민을 타자로 배척하는 것은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3월이다. 새 학기를 맞아 진학과 진로를 위해 많은 이들이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이주한다. 필자도 얼마 전에 일터를 옮겼다. 누군가에게는 설렘과 기대가, 또 누군가에게는 내일을 위한 수고와 고난이 기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잊지 말자. 뿌리내릴 땅만 있다면 생은 끈질기게 이어진다. 이주하는 모든 이들이 환대받는 세상을 소망하며, 새 땅을 향해 나아가는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배지연 대구대 인문과학 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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