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2010] 동해안 일천리 이야기 세상 <5> 이하석의 ‘우산국을 삼킨 나무사자’

  • 입력 2021-05-26 18:03  |  수정 2021-05-31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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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1
우해왕은 강성한 나라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왕의 기운이 거세고, 신체가 강건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역대 왕의 누구보다도 우산국의 힘이 바다에서 나온다는 걸 잘 알고 대비했기 때문이다. 그는 군사들을 이끌고 바다를 육지처럼 헤집고 다녔다.


“또 왜구가 노략질을 했습니다.”라는 보고를 받자 그는 말했다.
 

“도대체 그놈들은 어디서 출몰하는가?”
 

“대마도가 근거지입니다.”
 

“그렇다면 가서 뿌리를 뽑아야지.”
 

왕은 군사를 모았다. 군함의 편대의 위세가 대단했다. 대마도로 향했다. 대마도는 당시 아주 후진 상태에서 해적들의 근거지였다. 우해왕은 대마도주를 만나자마자 기선을 제압할 정도로 우해왕의 군사력은 셌고, 그의 풍모는 당당했다. 대마도주는 해적들의 노략질이 도주의 뜻이 아니라, 이 지역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자생적으로 이합집산하여 벌이는 일이며, 통제가 안 된다고 양해를 구했다. 이런 상태니 대마도주와의 담판은 거의 일방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는 우산국을 침범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대마도주는 항서에 가까운 문서에 서명했다. 해적들을 철저하게 단속하며 우산국과 잘 지내겠다는 뜻이었다. 우해왕은 으쓱하니 어깨에 힘을 주며, 좀 더 확실한 보장책을 받아내려고 했다.
 

“그 약속만으로는 안심이 안 되니, 도주와 내가 사돈이 되는 게 어떻겠소?”
 

사실상 도주의 딸을 인질로 삼겠다는 말이었다. 

 

도주가 오히려 이를 반겼다. “그거야, 저희가 바라는 일이지요.”

 

그렇게 해서 대마도주의 셋째 딸인 풍미녀를 데리고 와서 왕후로 삼았다. 왕후는 아주 예뻤다. 왕은 왕후에게 온 정신과 몸을 빼앗겨버렸다. 풍미녀는 온갖 사치로 몸을 치장하고는 그 교태로 왕을 흔들어댔다. 차츰 왕은 정사를 소홀히 했다. 지금까지 베풀었던 선정이 왕후로 인해 조금씩 흔들리더니 나중에는 폭정으로 치닫게 된 게다. 게다가 사치를 좋아하는 왕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우해왕은 군사력을 바람직하지 않게 소모했다. 우산국에서 구하지 못할 보물을 구하기 위해 신라를 침범, 해적질 같은 노략질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라는 큰 나라인데, 그런 신라에 해를 끼치는 이런 짓은 우산국의 장래를 보장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를 지적하고 말리는 신하들은 바다에 처넣어 버릴 정도로 우해왕은 모든 귀를 닫고 포악해졌다. 이러니 국정은 문란해지고, 바른 말하는 신하들은 입을 다물었다. 군의 기강도 해이해졌다.
 

“나라가 망할 징조로다”라는 말이 백성들 사이에서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왕후는 마녀야, 마녀”라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왕후의 환심을 사려는 우해왕의 신라 침범과 노략질은 점점 더해질 뿐이었다. 신라는 군사력을 모으면서 우산국 정벌을 도모할 기세였다.
 

“임금님, 신라가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무성합니다. 대비하소서.” 한 신하가 용기를 내어서 이마를 땅에 대고 간했다.
 

“제깟 것들이 감히 우리를 넘볼 수 있단 말인가?”하고 왕은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바다에서의 싸움은 우산국이 한 수 위라고 자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하가 다시 고언을 하자, 왕은 불같이 화를 내며 그 신하를 바다 속에 던져버렸다.

2
마침내 신라는 우산국 토벌 계획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신라왕은 하슬라(강릉지역)군주 이사부를 서라벌로 불렀다.
 

“우산국이 왜 겁도 없이 이런 짓을 하지?”
 

“우해왕이 왕후의 미모에 빠져 그 환심을 사려고 온갖 보물을 탐하기 때문입니다.”
 

“노략질이 도를 넘고 있다. 피해를 입은 백성들의 호소가 계속 올라오는군. 이 기회에 우산국을 쳐서 후환을 없애야겠다. 가서 우산국을 정벌하라.”
 

이사부는 군사와 배를 정비하고 바다로 나갔다. 이 급보에 우해왕은 거만하게 대응했다.
 

“신라는 육지에선 강할지 모르나 해전에는 우리를 당하지 못할 것이다.”
 

우해왕은 직접 바다에 나가 해전을 진두지휘했다. 비록 전에 비해 기강이 해이해졌다하나 우해왕의 불같은 성격은 단번에 군기를 장악하여 그 면모를 뚜렷이 했다. 이사부 역시 막강한 신라의 국력을 등에 없고 있어서 만만치 않았다. 신라와 우산국의 해전은 치열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의외로 빨리 나고 말았다. 바다를 누벼온 우산국 선단의 위력 앞에 신라군은 턱없이 무너져버렸다. 신라군이 퇴각하자 우해왕은 기고만장했다.
 

이사부는 참담했다.
 

“작은 섬에 불과하다고 너무 경솔하게 생각했다”고 그는 분을 삭이며 중얼거렸다. “면밀한 작전이 필요하겠군.”
 

이사부는 군사를 다시 정비했다. 강한 훈련으로 군사들을 단련했다. 한편으로는 우산국 군사들의 심리를 뒤흔들 계략을 세웠다.
 

다시 우산국 토벌의 출항을 알리는 고동소리가 길게 울렸다. 우산국의 함선들도 신라 함선들을 마주하여 진열을 갖추었다. 문득 신라 쪽에서 한 척의 작은 배가 우산국 함선 쪽으로 다가왔다. 싸우기 전에 사신을 먼저 보낸 것이다. 사신은 우해왕에게 항복을 권유했다. 그러나 지난 번 싸움에 이긴 우해왕은 이에 코웃음을 쳤다. 사신의 목을 베어 보냈다.
 

신라군은 군선을 앞으로 디밀었다. 군선의 앞이 이상했다. 멀리서 살펴보니 무슨 거대한 짐승 같은 게 모든 군선들의 뱃머리에 도사리고 앉은 것 같았다. 풍성한 짐승의 갈기가 누런 빛깔로 흩날리는 듯했다.
 

“저것들이 무슨 짐승이지?” 우해왕과 군사들은 의아했다.
 

갑자기 그 짐승들이 입에서 불을 뿜어냈다. 우산국의 군사들은 놀라움과 함께 겁을 먹었다. 섬 가 해변 바위 위에 모여 이 싸움을 지켜보던 섬 주민들도 놀라서 우왕좌왕했다. 갑자기 우산국의 진지 쪽으로 앞 쪽 함선이 불쑥 다가오더니 선미에서 신라군 하나가 크게 소리쳤다.
 

“이 짐승은 사자다. 모든 짐승의 제왕이다. 아주 사납지. 즉시 창과 칼을 거두어라. 그렇지 않으면 이 사자들을 풀어서 섬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먹게 할 것이다.”
 

우산국 병사들은 불을 뿜고 강인한 이빨을 드러낸 사자들 앞에서 전의를 상실했다. 우해왕은 어쩔 수 없이 이 전쟁에서 패배한 것을 깨달았다. 전의를 상실한 병사들을 이끌고 싸워봤자 결과가 번함을 깨달은 것이다. 우해왕은 투구를 벗어 던졌다. 항복의 표시였다. 전선을 거두고 신라군을 받아들이자, 신라군함들이 빽빽하니 해안에 포진한 가운데 이사부가 배에서 내렸다. 우해왕은 항복을 정식으로 선언했다. 그리고는 그 무서운 사자들을 가까이서 바라보았다.
 

“아아, 우리가 속았구나.” 우해왕은 신음소리를 냈다.
 

사자는 나무로 깎아 뱃머리에 세워둔 것이었다. 속을 파서 불이 나오도록 장치를 해두었다. 위해왕은 땅을 쳤다. 이사부의 꾀로 만든 사자들이 우산국을 망하게 한 것이다. 우해왕은 우산국에서 축출됐다. 우산국은 신라의 속국이 되어 매년 공물을 바치게 됐다.
 

울릉도 남양 포구에 우뚝하니 서 있는 사자바위, 그리고 그 옆 사자굴과 투구바위는 그날의 전장을 떠올려주는 흔적이라 전해진다.
이하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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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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