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노을증후군

  • 김명미〈주〉한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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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01  |  수정 2021-06-01 07:19  |  발행일 2021-06-01 제15면

김명미
김명미〈주〉한초 대표

작년 가을 전남 고흥에 있는 아름다운 섬, 거금도에 다녀온 적이 있다. 거금도의 노을은 특히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바다를 좋아하던 터라 며칠 전부터 설레었다. 언덕 위에 나지막이 자리 잡은 펜션에서 비치는,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붉게 타오르는 저녁노을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세상 모든 희로애락을 한꺼번에 품고 서서히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습에 경이로움과 황홀감에 빠지고,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멀어져가는 붉은 해를 사진에 담으려 애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노을'은 '놀'의 시적인 표현으로 지역마다 '너을' '북새' 등으로 다르게 불리기도 한다. 해돋이에 보이는 놀은 '아침놀'이고, 저녁 무렵 해넘이에 보이는 놀은 '저녁놀'이다. 그래서 아침놀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불빛이고, 저녁놀은 하루의 마무리를 의미하는 불빛이다.

문득 저녁노을을 보면서 아름답고 황홀함을 느낄 수 있다는 자신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젊다는 얘긴가 보다.

인생 황혼기에 접어든 노인들은 저녁노을을 보면 저무는 노을처럼 인생도 저물어 가는 듯한 감성이 극대화해 우울감과 고독감을 더 느끼게 되고, 노을 질 무렵 시간대는 자살률도 높아진다는 보고가 있다. 의학적으로 보면 해질 녘에 더욱 불안해하고 망상이 증가하는 일종의 '일몰(석양) 증후군(sundown syndrome)'이다.

그런데 젊은이에게는 저녁노을이 어떻게 비칠까? 적어도 우울감보다는 낮에서 저녁으로 넘어가는 또 다른 시작과 희망의 의미가 강할 것이다. 실제로 노을 질 무렵은 감성이 더 풍부해져 프러포즈 시 성공확률이 매우 높다고 한다. 같은 저녁노을이지만 개인이 처한 위치와 환경, 연령대 그리고 기분과 감성에 따라 서로 다르게 와 닿는다.

요즘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혼밥·혼술 등 홀로 지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특히 나이가 들어가고 외로워질수록 노을의 아름다움이 그저 황혼으로 다가와 삶의 상실감을 더해질 수도 있다. '저녁노을'이 지나면 다시 새벽이 오고 해돋이 전 여명과 함께 펼쳐지는 동살처럼 소중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예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김명미〈주〉한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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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미〈주〉한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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