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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경 〈한의사〉 |
주말에 경주 감포 쪽으로 드라이브를 했다. 감포들판은 한창 모내기 중이다. 이미 모내기를 끝내 여린 모들이 도열한 논도 있고 물을 받아놓고 모심기를 기다리는 논도 있다. 지금은 허리를 구부려 일일이 손으로 모심기를 하지 않고 기계로 한다. 이앙기로 모를 심는 광경이 도시인의 눈에는 신기하다. 미싱이 지나간 자리에 곧은 바늘땀이 생기듯 이앙기가 지나가면 모가 정확히 줄지어 차렷 자세를 한다. 논물아래 뿌리가 박힌 어린모는 햇빛과 바람과 비, 그리고 농부의 손길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리라.
인류가 가장 많이 먹는 곡물은 벼와 밀이다. 벼와 밀의 재배 환경은 강수량에 달려 있다. 연간 강수량이 1천㎜이하면 밀농사가, 1천㎜이상이면 벼농사가 적합하다. 전통적으로 모내기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심었다. 반면 고흐의 그림 '씨 뿌리는 사람'을 보면 농부 혼자 걸어가며 들판에서 일하는 모습이다. 그림처럼 밀은 맨땅에서 자라고 물이 많이 필요하지 않아 관개수로를 만들 필요가 없다. 이처럼 밀농사는 공동 작업이 적어 사람들이 모여 살 필요가 없으므로 집들이 띄엄띄엄 흩어져 있다. 이런 노동방식은 개인주의 문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아시아는 특정 시기에 비가 많이 내리는 몬순기후다. 벼농사는 많은 물이 필요하므로 치수가 중요하다. 저수지를 함께 사용하고 집단으로 모내기를 한다. 또 공동작업이 많은 벼농사는 함께 모여 살며 이웃과 사이가 좋아야 한다. 이런 노동과정은 강한 공동체 의식을 가져왔다. 우리나라가 코로나 방역에 성공한 이유 중 하나로 높은 시민의식을 꼽는데 이것은 바로 벼농사의 공동체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벼농사는 밀농사에 비해 노동력이 훨씬 많이 들어간다. 수렵 채집인들은 1년에 1천 시간 정도 일을 했다. 18세기 유럽 농노는 1년에 1천200시간을 일한 데 비해 벼농사를 짓는 농부는 1년에 대략 3천시간 일을 한다. 또 벼농사는 파종부터 모내기, 추수에 이르기까지 제때 물꼬를 막거나 틔우지 않으면 곧바로 수확량이 떨어질 만큼 예민한 작물이기에 근면과 정확성을 요한다. 벼농사는 근면 성실, 끈기와 지구력이라는 문화 유전자를 심어주었다. 세계 수학올림피아드에서 상위권 나라들은 한국, 대만(중국), 일본, 홍콩, 싱가포르이다.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모두 벼농사 문화권이다. 가장 오래 끈기 있게 문제를 푸는 학생들은 아시아 학생들이라고 한다.
이은경 〈한의사〉
이은경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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