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연극 훼방꾼

  • 정선현 극단 한울림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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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16  |  수정 2021-06-16 07:52  |  발행일 2021-06-16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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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현〈극단 한울림 배우〉

나의 중학생 시절 '무조건 단발'이라는 교칙이 있었다. 귀밑 3㎝. 멋쟁이는 아니었지만 매일 똑같은 머리 모양이 싫었다. 반곱슬의 단발머리로 만들 수 있는 헤어스타일이 몇 가지나 되겠는가.

하지만 나는 나비핀을 양 갈래로 꽂거나, 반 묶음 머리를 하거나, 정수리까지 끌어올린 묶음 머리를 하며 최대한 다양한 시도에 나섰다. 누구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똑같은' 내가 싫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것을 싫어하는 내 성격은 종종 종잡을 수 없이 드러나기도 한다.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날 때가 연극연습이다. 똑같은 상황과 대사를 반복연습 할 때 특히 그렇다. 같은 대사를 말해도 뉘앙스가 변화하고, 호흡이 조금만 달라져도 연기의 '맛'이 달라지는데 나는 이런 것이 좋다. 근데 이것은 억지로 짜 맞출 수 없어 나도 예상할 수 없다. 결국 상대방도 알 수 없는 예측불허의 연습 시간이 되지만, 결국 배우들끼리 치고 빠지는 호흡 속에서 작품 완성도를 높여간다.

이렇게 재미있는 연습과 달리 실전은 오히려 밋밋한 느낌이다. 뭣도 모르는 신입 시절 때는 어제는 일어서서 대사를 하고, 오늘은 앉아서 대사를 하는 등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버렸지만, 그럴 때마다 상대 배우가 곤욕을 치렀기에 자제하는 것이 몸에 배였다.

특히 '틀리면 안된다'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 공연일수록 상대 배우와 약속한 대로만 연기하는데, 똑같은 것 싫어하는 나로서는 늘 아쉽다. 긴장만 있고 재미는 없는 거다. '무대 위 배우는 살아있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무대 위에서 살아 숨 쉬며 끊임없이 반응하고 느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선 나의 오감을 깨워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늘 똑같은 연기에서 벗어나고 싶어진다. 그럼 나는 이런 감정을 또 눌러야 하고, 결국은 같은 말과 감정을 반복하는 '앵무새'가 되는 듯하다.

연습 때처럼 마음에 드는 공연을 펼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깊어지지만, 요즘은 작품에 대한 집중을 방해하는 것이 '나'라는 생각도 든다. 어제와 다른 것만이 살아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다가오는 공연에서도 개인적 고집은 접어두고, 그간 함께 호흡을 맞춰 왔던 동료 배우들을 믿고 집중해 보려 한다. 아쉽지만 오늘도 연극 훼방꾼 '나'는 아웃이다.정선현〈극단 한울림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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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현 극단 한울림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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