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규 기자의 '지구촌 산책' .4]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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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21   |  발행일 2021-06-21 제21면   |  수정 2021-07-05 08:07
로마노프 왕조 방대한 컬렉션에 '이건희미술관' 오버랩

지난 4월 삼성가 유족들은 이건희(1942~2020) 삼성그룹 회장이 평생 모은 미술품 2만3천여 점을 국·공립 기관에 기증한다고 발표했다. 국보·보물도 수두룩한 수집 미술품의 양과 질은 세상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건희는 보기 드문 진정한 미술품 수집가였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와 미술품을 거래한 주요 미술품 판매상 중 한 명으로, 1980년대부터 20년 동안 이건희의 미술품 수집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가나아트·서울옥션 이호재 회장은 최근 그의 미술품 컬렉션은 돈만 있어서 되는 수준이 아니며, 시간이 남을 때 한 게 아니라 엄청난 시간과 공을 들여 공부하며 이뤄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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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 중심 건물.

그의 미술품 수집은 우선 해외에 있는 '국보급' 미술품을 찾아 국내로 들여오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고, "국가가 나서 하지 못하는 부분에 내가 할 역할이 있다"고 이야기하곤 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그가 도록을 꼼꼼히 검토한 뒤 구매 대상 작품에 동그라미 표시를 했는데, 동그라미 두 개는 '놓치지 말고 희생을 해서라도 무조건 사라'는, 동그라미 하나는 '가능하면 사라'는 뜻이었다면서, 경합 상대가 한국인이면 무리해서 경쟁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도 전했다.

이우환 화백은 평소 주변의 지인들에게 "이건희 회장은 국보 같은 사람"이라며 "시간이 갈수록 그의 가치를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한다.

'삼성'이라는 기업은 언젠가 사라질지 모르지만, 이런 미술 사랑과 사명감 덕분에 이건희는 그의 수집 미술품과 함께 영원히 남을 것이다.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 벽화나 고구려 고분 벽화 '무용총 수렵도'처럼. 예술의 힘이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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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렘브란트 작품 '돌아온 탕자' 앞에는 항상 관람객들로 붐빈다.

◆개인 컬렉션으로 시작된 미술관(박물관)

'이건희 미술관' 건립 문제가 국민적 화두가 되고 있다. 이와 관련,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이 떠올랐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함께 지구촌의 유명 미술품을 비롯한 문화유물을 대규모로 소장하고 있는 대표적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들을 둘러보면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그 엄청나게 많은 소장품을 어떻게 수집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이와 함께 전시작품과 관람객이 너무 많아 작품을 제대로 관람할 수 없음을 항상 느끼면서 인간에게 미치는 예술작품의 힘이 얼마나 큰지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약탈물이 중심인 루브르 박물관이나 대영박물관 등과는 달리 개인의 수집품으로 출발한 박물관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컬렉션에 기초를 두고 있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300만점의 소장품과 400여 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연간 350만명의 관람객이 방문한다고 한다. 왕조시대 궁전인 겨울궁전을 중심으로 총 6개의 주변 건물을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약탈물 중심인 유명 박물관들과 달리
개인의 수집품으로 출발한 배경 눈길
300만점의 소장품 400여개의 전시실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림을 좋아해"

캔버스에 유화 렘브란트 대표적 작품
'돌아온 탕자' 보기 위해 관람객 북적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표트르 대제(1672~1725)의 컬렉션에 이어 여자 황제 예카테리나 대제(재위 기간 1762~1796)가 유럽으로부터 사들인 다양한 미술품이 미술관 컬렉션의 기초가 되었다. 예카테리나 여제가 1764년에 개인 컬렉션을 겨울궁전에 따로 공간을 만들어 전시하면서 '은둔소'라는 의미의 '에르미타주'라 칭한 것에서 그 명칭이 비롯됐다. 그는 "나는 그림을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림을 좋아한다"며 유럽에서 구입한 예술품을 친구들과 함께 감상하기 위해 겨울궁전 옆에 작은 궁전 '에르미타주'를 지어 소장품을 전시해 감상했던 것이다. 그녀가 사망할 당시 수집 미술품은 4천점 정도였다.

그 후에도 꾸준히 미술품의 구매가 이루어졌으며, 1852년부터는 일반에 공개되기 시작했다. 1917년 10월 혁명 후 귀족들로부터 몰수한 수많은 미술품이 유입되어 컬렉션의 규모가 세계 최대를 자랑하게 되었다. 1922년부터 '국립 에르미타주 박물관'으로 명명했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유명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수많은 작품 중 가장 대표적 작품으로 꼽히는 미술작품이 있다.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 화가 렘브란트(1606~1669)의 '돌아온 탕자'다. 렘브란트는 빛과 어두움을 특별히 잘 활용해 '빛의 화가'라 불린다. 루브르 박물관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있다면, 에르미타주 박물관에는 이 작품이 있는 것이다

'모나리자' 앞에서도 관람객이 너무 많아 가까이 가서 볼 수가 없을 정도였는데, '돌아온 탕자' 앞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루브르의 '모나리자'는 방탄유리에 갇혀 있지만, '돌아온 탕자'는 그렇지 않고 '모나리자'보다 더 큰 대작이어서 보는 느낌은 더 좋았다.

에르미타주는 렘브란트 작품 24점을 소장하고 있다. 렘브란트의 고국 네덜란드를 제외하면 규모와 수준에서 세계 최고다. 예카테리나 대제는 1764년 베를린의 화상인 고츠콥스키로부터 네덜란드와 플랑드르의 회화 225점을 구입했는데, 이때 '돌아온 탕자'도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가로 1.8m, 세로 2.4m의 캔버스에 유화물감으로 그린 대작이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에는 렘브란트 작품 전시실이 따로 마련돼 있다. 그 전시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정면 벽면에 '돌아온 탕자'가 단독으로 전시돼 있다.

'돌아온 탕자'는 1669년경에 그린 렘브란트의 마지막 대작으로 추정된다. 작품의 소재는 신약성서 '누가 복음' 15장의 이야기다. 아버지로부터 자기 몫의 재산을 미리 받아 객지로 떠난 아들이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탕진하고 남의 집 더부살이로 연명하다 정신을 차리고 돌아오자, 아버지가 사랑으로 맞아주며 성대한 잔치를 벌인다는 내용이다.

최고의 성화로 꼽히는 '돌아온 탕자'는 이 이야기 중 아들이 돌아와 아버지에게 안기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무릎을 꿇고 안기는, 초라한 모습의 아들 어깨와 등을 눈을 지그시 감은 아버지가 두 손으로 토닥이고 있다. 값진 옷과 화려한 모자를 쓴 채 서 있는 형은 굳은 표정으로 아버지와 동생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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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규 전문기자

이건희 미술품 컬렉션은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대제의 컬렉션을 떠올리게 한다. 절대군주 시대에는 최고 재력을 가진 이들이 군주라면, 자유경제 시대인 현대는 최고의 기업가들이 그 지위를 대신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희가 미술품 수집에 몰입하고, 그 수집품을 기증하게 된 것은 큰 다행이다.

삼성의 성공 신화에 이어 '이건희 미술관' 신화가 또 만들어지길 바란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몰려 과밀 문제가 국가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수도권에 미술관을 또 하나 추가하는 것으로는 신화가 창조될 수 없을 것이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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