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에서 정권(政權)을 평가할 때 쓰이는 두 가지 잣대가 있다. 정통성(legitimacy)와 효율성(efficiency)의 개념이다. 정통성은 정권의 정당성, 도덕성을 말한다. 국민이 권력의 지배를 수긍하는 척도와 연계된다. 효율성은 한마디로 일을 잘하느냐의 여부다. 능력으로 국민의 만족도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박정희 육군 소장은 5.16 군사쿠데타로 일거에 권력을 거머쥐었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는 출발부터 정통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 박정희가 "나라의 혼란이 진정되면 혁명군(軍)은 다시 군으로 돌아갈 것이다"고 애초에 언급한 것은 '권력의 정통성'에 치명적 문제가 있다는 점을 스스로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약속을 번복하고 18년의 통치를 이어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공과 논쟁에도 불구하고 한국 현대사에 절대적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란 점은 명백하다. 그는 정통성의 약점을 넘어 효율성의 신화를 썼다. 초고도 압축성장, 개발독재라 한다. 세계적 연구대상이 된 지 오래다.
이재명 정권은 민주적 장치인 선거란 경쟁 속에 탄생했다. 정통성의 문제는 없어 보일 듯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대법원은 대통령 선거를 불과 한달도 남겨놓지 않고 이재명 후보의 출마 정당성에 의문을 가져올 '유죄 취지 파기 환송' 결정을 내렸다. 이것만이 아니다. 이 후보는 대장동을 위시한 열 개가 넘는 혐의에 5개 재판을 껴안고 있었다. 사법 리스크다. 반대파들이 권력의 정통성에 흠집이 있다고 주장할 만하다.
권력은 생태적으로 도덕적이기 어렵다. 철인 정치인은 플라톤의 머리 속에서나 있지, 현실에는 존재 불가다. 온갖 도덕적 흠결로 점철된 트럼프도 두 번씩이나 권좌에 올랐다. 그렇다면 권력의 효율성은 진정 중요한 잣대로 남는다. 이재명 대통령은 현재 60% 전후 국정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수긍할 부분들이 있다. 인수위도 없이 당선된 이 대통령은 곧장 닥친 트럼프의 저돌적 관세협상을 이겨낸 공이 있다. 물론 관세협상의 성공 배경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박정희 시대에 기초 공사된 조선, 반도체, 자동차, 방위 산업의 대기업이 자리한다.
이 대통령의 행정 순발력도 지지율의 근간이 된다. 중앙부처 및 산하기관 업무보고는 박정희 시대에 제대로 작동했다는 평가가 있다. 이 대통령도 최근 마무리된 1차 업무보고를 통해 성남시장, 경기도지사를 거치며 축적된 행정 능력을 과시했다. 소액주주의 권리, 배당 과세 조정을 건드리며 4천 포인트를 견인한 주식시장도 정권의 효율성을 확장시켰다.
정권의 순항에도 불구하고 효율성 마일리지를 까먹는 장면들도 속출한다. "업무보고가 넷플릭스보다 더 재미있다"고 자찬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이 요즘 교도소에서 인기 있다"고 했다. 김민석 총리는 "5년이 짧다"고 던졌다. 덕담이겠지만 자칫 아부성 발언으로 들릴 수 있다. 아부가 통용되면 권력은 휘청거린다. 제 발 저리듯한 행태도 남발한다. 현직 대통령 재판중지법, 판·검사 법왜곡제, 대장동 항소포기 종용 등이다. 정통성 불안 고백이다. 또 있다. 2차 종합세트 특검이다. 이미 권력을 쥐었는데 한 나라를 '특별검사의 나라'로 만들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친위 쿠데타로 권력의 정통성을 스스로 차버렸다. 극단적 케이스다. 박정희는 정통성의 약점을 뒤로하고 역사의 평가에 맡겼다. 이 대통령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정통성에 성마르게 대응하기보다 효율성에 집중하는 게 최선의 전략이다. 효율성이 증대되면 정통성 시비를 잊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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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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