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경 시인·대구문인협회 자문위원
겨울이 깊어지고 기러기들이 끼룩끼룩 비행할 때면 우리는 누구나 철학자가 되어간다.
오래전에 '소설 장자'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바 있다. 장자(莊子, BC 369-286)가 살던 전국시대에는 전쟁이 극심했고 법가·유가·묵가 등 사상 경쟁이 치열했다. 대부분의 사상가가 정치 참여를 고민했지만, 장자는 근본적으로 정치 자체를 멀리했다. 그는 무위 사상의 대표자 격이었다.
장자는 어느 날 꿈에 나비가 되었다. 훨훨 날며 즐거워서 자신이 인간인 줄도 몰랐다. "과연 내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가 꿈에 장자가 된 것인가?" 장자는 꿈속의 나비도 그 순간에는 완전한 '나'이고 깨어난 장자도 그 순간에는 '나'여서 고정된 자아란 없다고 생각했다. 나비와 인간, 꿈과 현실, 삶과 죽음을 다르다고 여기는 순간, 속박이 생긴다. 심지어 장자는 아내가 죽었을 때도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하고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그는 "처음엔 슬펐으나, 죽음 또한 자연의 변화임을 깨달았다"라고 하였다.
초나라의 왕이 장자를 재상으로 삼으려 하자 장자는 이를 거부하며 "제사에 바칠 거북이는 죽어서야 껍질이 귀해진다. 나는 꼬리를 질질 끌며 진흙 속에서 살고 싶다."라고 하여 명예로운 속박보다 비천한 자유를 선택했다고 한다.
서양에는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견유학파(犬儒學派, Cynicism) 디오게네스(Diogenes, BC 412~323)가 있다. 그는 인위적 제도 규범을 불신하며 권력과 부를 위험한 것으로 보았다. 당대의 최고 권력자인 알렉산더 대왕이 "원하는 게 있느냐?"라고 물었을 때, "아무것도 필요 없다. 햇볕이나 가리지 마라"라고 한 것은 얼마나 멋진 말인가?
이 말을 들은 알렉산더 대왕도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다"라고 고백했다니, 최고 권력자의 속마음도 인간 본연의 자유를 그리워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디오게네스는 욕망을 버리면 권력과 부와 명예보다 자연스럽고 자족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진리를 실천한 거인이 아닐 수 없다.
동양과 서양이라는 양극에서 서로 소통한 적은 없지만 삶의 부조리를 깨닫고 실천한 면에서 너무나 닮아 있는 두 대가를 흠모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진정한 자유인이 되기를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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