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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희〈미술사학자〉 |
도대체 어떤 그림이 감동적일까. 명색이 미술사학자 자부심으로 명품 감식안을 털어놓으면 이렇다. 일본 그림들은 이념표출이 약한 대신 기교가 넘쳐나고, 중국 작품들은 숙련으로 쌓은 탄탄한 표현기법에 단연 방점이 놓인다. 그렇다면 한국 그림에서는 의외겠지만 감정의 진솔한 표현에 비중이 놓인다. 심성의 표현, 도대체 이런 것이 예술이 되다니 세계가 놀라고 있다.
일례로 우리나라 근대 시기, 소위 '국민화가'로 불리는 최고의 화가 박수근·이중섭 작품을 판독해본다.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 또한 많다. 매우 빈곤했다는 점이 첫째. 박수근은 원래 가난한 집안이지만, 평안남도 평원군이 고향인 이중섭은 원래는 부유했다. 6·25전쟁 때 일본인 아내와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월남한 이후부터 1956년 작고 때까지 처절하리만큼 찌든 가난 속에 생을 보냈다. 또 하나 공통점은 삶 자체에서도 작품상에서도 수련 같은 청초한 순수함이 극치의 빈곤 속에서 꽃피고 있다는 점. 필자는 그런 명경지수 같은 순수한 심성이 작가의 위대함이자 작품의 위대함이라고 감히 설파하고 싶다. 그들 그림에 어디 티끌만 한 요령이 있으며 가식이 있는가. 두 작가 모두 부인과의 연애 스토리에서도 예술품 이상의 찌릿찌릿한 순수함의 보자기에 싸여 있다.
박수근 작품은 일견 진흙으로 문질러 놓은 듯한 텁텁한 질감에다 인정 넘치는 농촌 부녀자들 모습이 대부분이다. 눈을 현혹게 하는 솔깃한 소재 하나 없지만, 그 얼마나 가식 없는 농촌 삶이고, 소박한 농촌 정경 아닌가. 명색이 예술작품에서 오로지 순수한 심성만을 드러내니 그게 뭐 그리 대단하냐고 비난받아 국전에도 낙선될 만큼 한없이 실망에 빠지기도 했다. 이중섭은 어떤가. 북녘 땅 원산에서 자유를 찾아 부산으로 월남한 이후는 가난의 수렁에 빠진다. 곧장 남쪽 나라 끝자락 제주도 서귀포로 가서 해초를 뜯어 먹으며 연명하다 결국에는 가난에 못 이겨 꼬마 둘과 부인을 일본으로 보내고 홀로 이곳저곳 허우적거리다 외로움에 객사하는 처지가 되고 만다. 그래서 그림에서도 온통 아내와 자식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재료조차도 하찮은 것뿐 떳떳한 대작이라곤 하나 없다. 하지만 그의 인간 밑바닥에 오직 하나 남은 것, 그 심성의 순수함만이 독백처럼 담겨 있어 그것이 눈물겹도록 감동적이다. 순수한 감정표현, 한국예술에서만 볼 수 있는 이런 특징이 지금에서야 세계 속으로 울림을 주고 있다.
이중희〈미술사학자〉
이중희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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